[칼럼] 노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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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사람의 일생에는 반드시 위기가 있다. 인생의 성공 여부는 이 위기를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노아가 위기를 맞았다. 언제 위기를 맞이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로울 때 위기가 찾아왔다. 세상이 악하고 죄악으로 가득 찰 때는 노아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을 찾았다. 남들이 미친 일을 한다고 할 때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묵묵히 백이십 년간 방주를 만들었다. 사람들의 조롱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사람들은 타락했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은 의로운 길을 가고 있으니 사람들의 눈에 노아의 행위가 얼마나 눈에 가시같았을까? 그런데도 이 모든 환경을 이겨내고 의로운 길을 걸어갔다.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이 끝나고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때 노아는 실수를 한다. 그 실수는 술로 시작한다. 홍수가 끝나자 노아는 포도를 심었고 그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노아는 술에 취해서 자고 있었다. 그때 세 아들 중에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렸다 (창 9:22). 무슨 의미인가? 먼저, 아버지가 발가벗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서 아버지를 없신 여기면서 조롱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동성애로 해석할 수 있다. 성경에서 “하체”는 생식기를 가리키는 완곡 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레 18장). 이를 근거로 어떤 학자들은 함이 노아와 동성애적 행위를 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 정확한 의미인지 단정 지을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본문의 상황이 절대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짓을 했든지 간에, 노아는 자기 아들이 잘못을 범할 수 있는 상황을 제공했고, 함은 죄를 지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결국 함이 저주를 받는다. 아들을 저주하는 아비의 심정이 편하겠는가?

 

이 사건은 독자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편할 때 조심하라는 것이다. 만사형통할 때 조심하라는 것이다. 만사형통할 때 사탄 마귀는 가만히 두지 않는다. 다윗이 그랬다. 블레셋 군대와 싸우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낼 때 그는 거룩하게 살았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언제 그의 패망이 시작되었는가? 많은 것을 이루어 놓은 후였다. 어느 날 그는 궁정에서 한가로이 걷는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왕궁에서 한가로이 걸을 여유가 없다. 하지만 국가가 안정되고 제도와 정치가 잘 정비되었을 때 그는 특별히 할 일이 없기에 왕궁을 한가로이 걸을 수 있다. 그는 그곳에서 한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후 그는 그 여인(밧세바)과 간음하고 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그 여인의 남편을 살인했다. 이 일로 그는 쓰디쓴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

 

상황과 환경이 좋지 않은 것이 반드시 저주의 열매는 아니다. 안 좋은 환경은 오히려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반면 승승장구하는 삶을 사는가? 넘어지지 않을까 조심해야 한다. 교만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노아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