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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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 할 때 – 위에 것을 찿고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2).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강한 표현으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라’라고 했는데 여기서 이 ‘죽여라’라는 말은 부정 과거 명령형 동사로 ‘ 지금 단행하라’. ‘결연히 단행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와 같은 땅에 있는 지체가 좋아할 모든 것들을 버리고 심지어 단절하라고 하면서 이러한 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인다고 할 때 무엇을 대상으로 죽이라 합니까? 성경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탐심을 경계합니다. 바울은 탐심을 우상숭배(골3:5)라 했고 C.S Lewis는 탐욕을 ‘재물에 대한 욕심’이라 했습니다. 물질에 대한 사랑, 즉 탐욕은 예수님께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 하느니라(마6:24)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사랑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막는 것입니다. 성경 누가복음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의 삶을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다(눅15:16)’고 묘사하시면서, 탐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둘째 아들은 당시 유대인들이 혐오했던 돼지만도 못한 삶을 사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탐욕은 사람을 해치고,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부릴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탐심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이익의 수단으로 전락되어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부인되는 비참함이 있는 것입니다. 탐심이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에 성경은 십계명중 10번째 계명인 –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20:17)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는 생각이나 욕망을 추호도 마음 속에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맘몬, 즉 재물의 신을 같이 섬길 수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은 위기의 사람을 구하기도 하고, 돈으로 사람들의 인생이 변하기도 합니다. 이런 재물의 위력 때문에 사람들은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애굽기20:3)’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맘몬을 하나님과 동등한 신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맘몬의 실체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겨 탐욕으로 이끌어가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을 자기의 노예로 살게 만듭니다. 마치 재력이 풍성하면 행복할 것 같고, 인간다운 삶을 살 것 같게 속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리어 삶의 허무를 느끼면서, 파괴되어 가는 인간성을 스스로의 모습에서 보게 됩니다. 바울은 –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5-6)고 했습니다. 바울은 탐심은 우상 숭배, 즉 ‘십계명 중 하나님의 첫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 했고,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는 생각이나 욕망을 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맘몬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삶의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과 동등하게 그 무엇을 신뢰하거나 만들어 소유하는 일이기 때문에 탐심, 즉 우상 숭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참된 위로가 없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위로를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참된 위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