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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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목사(시카고 나눔교회 담임)

 

KWMA(한국세계선교협의회) 발표에 의하면 ‘2019년 한국 선교사 파송 현황’은  2만7,993명으로 171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교회 선교파송 국가중 10위를 차지한 이슬람권나라 선교사 수가 줄면서, 동남아국이 대신 10위권에 자리매김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의 코로나 19 전염병으로 세계 선교의 새로운 변화와 패러다임(paradigm)이 요구된다. 코로나 19의 시대를 겪는 이시대에 가장 힘든 악조건속에서도 복음을 전했던 초창기 선교사들의 숨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오늘의 인물 소개는 존 페어맨 프레스톤 선교사이다. 그는 1875년 4월 30일 플로리다주 페르난디나에서 아버지 사무엘 프레스톤 목사(Rev. Samuel Rhea Preston)와 어머니 아이다 슈트펜(Ida Sutphen) 사이에서 태어났다.

1903년 4월 18일에 목사안수를 받았고 같은 해 9월 2일에 애니 쉐논 윌리(Annie Shannon Wiley)와 결혼하였다. 결혼 직후인 9월 29일에 아내와 함께 고향을 떠나, 11월8일에 목포에 도착했다. 1903년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하여,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는 1940년까지 37년간 목포, 광주, 순천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전남지역 기독교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교회를 개척하고 직접 목회하기도 하였다. (목포교회, 현 양동교회, 현 양림교회), 교육방면에서도 학교의 설립과 발전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목포의 영흥학교와 정명여학교, 광주의 숭일학교, 순천의 매산학교와 매산 여학교의 발전에 그가 끼친 공헌을 빼놓기 어렵다. 또한 전남지역 성경학교 설립과 발전에도 중요한 기여를 하여서 이후 호남신학대학교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기여 하였다. 그는 나병원 위원회(Leper Hospital Committee) 위원으로 참여 하면서 광주의 나병원이 순천 스테이션 경내인 여수로 옮겨와 이곳에 애양원 이 설립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프레스톤을 빼놓고는 전남지역 기독교 역사를 논할수 없을만큼 효율적 선교전략과 긴밀한 상호관계와 협력은 목포와 광주와 순천을 중심으로 한 전남지역 기독교 발전의 성장의 동력이었다. 첫 선교지였던 목포에 대하여 말하기를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문을 여시고 우리를 부르신 이 일을 감당할 사람을 구하는 것”과 성장하고 있는 교회의 “교인들을 잘 지도하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이시기는 선교지가 폐쇄된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선교의 문을 열어 집중적인 섬선교로 교회를 개척하여 60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6명의 세례자와 20명의 학습교인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계기로 전남 지역 인구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도서선교로 확장이 되어 목포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면서 기존의 예배당은 이미 포화상태가 되었다.

프레스톤은 사경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국 기독교의 높은 수준을 확신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추운 겨울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비용을 스스로 지불하며 어려운 환경 가운데 참석하는 사람들은 한국교회의 순수함과 헌신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말하였고 교회가 성장하는 이유라고 보았다. 프레스톤은 1913년에 순천으로 옮겨와 사역의 총책임을 맡았는데 이 지역의 선교가 자치의 시대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지역의 여러 교회들을 세우고 돌보는 일에 집중되었다. 선교 보고서에 의하면 그는 “한국의 토착교회에 보충적이고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아직 한국교회가 가난과 인력 부족과 다른 이유로 전도와 교육과 의료사역을 홀로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모든 사역을 한국교회로 이양시키는 것이 선교회의 일관된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프레스톤은 1940년에 일제의 선교사 추방으로 한국을 떠난 후에도 미국에서 순회강연을 하며 일제의 탄압 아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미국 교회의 기도와 지원을 지속적으로 요청하였다. 그러다가 1946년 6월 1일에 미국에서 은퇴하였고 그후 1975년 6월 6일에 조지아주 디케이터에서 사망하여 그곳에 묻혔다. 조선 땅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헌신으로 복음의 씨는 오늘날 큰 열매로 결실맺게 하였다.

※참고문헌: 양화진 선교사들의 삶과 선교, 한국교회사학회편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하>, 기독교일보 2019년 1월호, 최영근 저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의 선교와 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