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35] 고든 A. 켄뮤어(Gorden Alexander Kenm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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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목사(시카고나눔교회 담임)

한국말로 성경이 번역되고 보급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헌신자들이 있다. 특히 초창기 한국 성서번역을 위해 세개의 성서 공회(영국, 미국, 스코틀랜드) 를 연합하여 번역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알렉산더 켄뮤어 선교사이다. 그는 1856년 영국에서 출생하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 재학 중에 중국선교로 지원하였다. 1887년 2월에 부인과 함께 마카오에서 선교사로 활동을 하다가 영국성서 공회가 중국의 남부지부와  중부지부를 통합 하면서 그는 번역 출판과  회계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만주 심양에서 성서를 번역하며 활동하던 로스(Ross)의 성서 번역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한글 성서 번역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당시에  언더우드 선교사, 헐버트 선교사도 로스의 번역을  지적하며 새로운 성경번역에 공감했다. 알렉산더 켄뮤어는 영국 성서공회, 미국 성서공회, 스코틀랜드 성서공회가 연합으로 운영되는 “중국위원회”를 모델로 한국 상임성서위원회 조직을 개편하도록 제안 및 성서번역을 추진하였고 그는 만주-한국 담당 임시 총무로 선임되었다.

영국 성서 공회에서는 먼저 한국지부 개설 준비 작업에 착수하여 1896년 5월 20일 결성하고 켄뮤어는 초대 총무가 되었다. 그는 성서번역과 반포사업을 지휘하며 1900년에 신약 전체를 번역하는데  큰 공헌를 했다. 1904년에 대표성을 가진 세개의 성서공회(영국, 미국, 스코트랜드) 연합 성서위원회 공동총무(Joint Agent)로 선임되었고 6개월 간 일본에  머물면서 “신약 전서”의 원고와 교정지를  일일이 검토하고 인쇄에 넘겨 성서를 계속 출간했다.

그러나 1904년 구약 번역 착수 중 성서번역 사업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신경쇠약으로 쓰러져 에비슨 의사의 치료와  장기 요양 권고로 결국 하던 일은 밀러 부총무에게 일임하고, 1904년 5월 3일 서울을 떠나 일본과 시애틀을 거쳐 6월초에 런던으로 돌아갔다. 오늘날 성경이 번역되어 우리 손에 오기까지는 성서 공회간의 갈등과 조직의 해체들이 있었지만 조정과 합의로 한글 성서의 새로운 번역과 반포를 통하여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교회가 성서주일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켄뮤어 선교사의 큰 역할이었다. 민족 말살 정책을 자행하던 일제는 한국에 와 있던 선교사들과 외국 기관들을 추방하였지만 그 계기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조선성서공회’ (현 대한성서공회) 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지금은 한국 세계선교협의회(KWMA 2019) 통계에 의하면 선교사 파송 원조를  받던 나라가 세계 200여 개 국가에 2만8,039명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또한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 지부인 성경번역 선교회(Global Bible Translators, GBT)통해 미전도 종족 개척을 위해 성경 번역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복음의 빚을 갚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참고도서: 대한성서공회사, 양화진 선교사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