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영웅 밥 베이커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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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에서 혁혁한 공로로 동성무공훈장을 2차례나 수훈한 밥 베이커 자동차 딜러 설립자 밥 베이커 전 회장이 별세했다.

동성무공훈장 2회 수훈, 밥 베이커 자동차 딜러 창업
평생 수많은 자선 베풀어

한국전에서 세운 혁혁한 공로로 동성무공훈장을 2번이나 수훈한 샌디에고 밥 베이커 자동차 딜러 설립자 밥 베이커 전 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베이커는 1931년 10월1일 어머니 하렘과 아버지 도리 베이커 사이에 4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대공황 때 자란 그는 8살 때 8센트짜리 잡지를 팔며 가족을 부양했다. 10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그는 위탁가정과 하숙집을 전전했고, 심지어 노숙도하며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혼가정의 자녀는 사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1950년 18세에 미육군에 입대해 1953년 2월 한국전 최전선에 배치됐다.

베이커 상병은 육군 3사단 15연대에 배속돼 적들이 한국의 수도 서울로 곧장 진격할 수 있는 요충지인 철의 삼각지대에 위치한 작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해리 전초기지 (김화)전투에 참가했다.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버텨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여러번 자원해서 적진 후방 척후활동을 하며, 포격전과 지뢰지대 통과과정에서 정찰병들을 안전하게 지휘했다. 그는 이 전투에서 세운 영웅적 공로로 2번이나 동성무공훈장을 수훈했다.

1953년 12월에 제대한 후 1954년 캘리포니아 버뱅크에서 친구의 포드 자동차 영업점에서 영업사원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타고난 친화력과 수완으로 성공가도를 달렸고, 샌디에고에서 밥 베이커 자동차 딜러 그룹를 설립해 큰 성공을 이뤘다.

한국전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느님의 가호‘였음을 평생 굳게 믿은 그는 가톨릭 교회와 학교, 퇴역군인과 솔루션스 포 체인지(노숙인 등 빈곤계층의 재기 및 커뮤니티 회복을 위한 단체) 심사 프로그램, 북부카운티 노숙인 돌봄 비영리단체 등에 수년간 수백만달러를 후원했다.

2010년에는 김화전투에 관련된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 사재 100만달러를 들여 다큐멘터리 영화 “Hold at All Costs:The Story of the Battle of Outpost Harry”를 제작해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도 했다.

또 2016년에는 한국전쟁동지들을 추모하기 위해 미라마 국립묘지에 30피트 높이의 종탑을 짓는 데 25만 달러를 기부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불운은 따랐다. 2009년 엘카혼 매장에서 판매한 렉서스 자동차의 비정상 급가속으로 인한 사고로 일가족 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도요타와 렉서스 자동차의 급가속 문제가 제기돼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고 희생자들(당시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순찰대 소속 마크 세일러, 그의 아내, 딸과 처남 등)의 유가족들은 베이커와 도요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조사결과 바닥 매트 설치 잘못으로 가속패달이 (주행중) 고정됐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도요타는 1000만대를 리콜하고 10억달러이상 벌금을 지불했고, 베이커는 액수미상의 금액을 세일러 친척에게 지불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희생자 유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알고 몹시 괴로워 했다.

2016년 모든 지분을 아들 크리스에게 양도하고 은퇴했다.

크리스는 칼스배드 매장을 확장했고, 손자 코비(27)가 계속해서 가족경영 체계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미사는 9월 18일 오전 10시 30분 카멜벨리에 있는 성 데레사 성당에서 열린다.

<이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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