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부터 희토류까지···아프간 2라운드는 ‘경제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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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인 19일 수도 카불에서 시민들이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여성 인권 보장과 자유로운 이동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EU “아프간 개발원조 자금 지급 중단”
자금줄 끊긴 탈레반 마약 손댈 가능성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이 불러올 경제적 영향은 곧 전 세계에 감지될 것이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의 귀환이 여성 인권뿐 아니라 경제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탈레반을 불신하는 서방국이 줄줄이 돈줄을 조이면서 세계 최빈국이 ‘검은 산업’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과 패권경쟁에 나선 중국은 아프간의 막대한 광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경제를 둘러싼 탈레반과 세계 각국의 ‘2라운드’가 이제 시작되는 분위기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아프간에 대한 개발원조 자금 지급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EU 27개국은 올해부터 2024년까지 이 지역에 12억 유로(약 1조6,583억 원) 지원을 약속했는데 원점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독일과 스웨덴 역시 전날 “아프간이 이슬람 율법을 도입할 경우 돈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자금지원을 고리로 탈레반에 인권 존중을 압박한 셈이다.

자금줄이 끊긴 아프간은 굶주림 앞에 놓이게 됐다. 아프간은 지난 반세기 끊임없는 정쟁과 내전, 외세 침략과 간섭이 이어지면서 경제가 황폐화됐다. 지난해 세계은행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8억1,000달러(약 23조1,600억 원)에 불과하다. 한국(1조6,310억 달러·1,908조 원)의 1.2% 수준이다. 그나마 국제사회 지원은 버팀목이 됐다. 작년 아프간 GDP의 42.9%가 원조에서 나왔다. 올해도 국제사회로부터 33억 달러(약 3조8,620억 원)를 받을 예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이 원조를 줄줄이 끊을 경우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BBC방송은 “아프간 경제는 취약하고 원조 의존형”이라며 “금융지원이 불확실해질 경우 경제 전망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서방의 자금 압박이 아프간을 마약 산업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미 아프간은 아편과 헤로인의 원료인 양귀비의 세계 최대 재배지다. 전 세계 생산량의 90% 이상이 이 곳에서 나온다. 탈레반 역시 연간 수익의 60%를 마약 거래로 충당해왔다. 이날 탈레반이 “대체 작물을 마련해 마약 없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며 국제사회의 지속적 지원을 호소했지만, 서방 국가의 외면이 경제난으로 이어질 경우 탈레반뿐 아니라 가난한 농민들마저 양귀비 재배와 마약 판매에 손댈 수밖에 없다. 특히 아프간산(産) 마약은 파키스탄과 이란, 터키 등을 거쳐 유럽으로 유입된다. 제재가 되레 서방의 마약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국제 원조가 갑자기 중단돼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오랜 기간 탈레반의 현금 공급원이었던 아편(양귀비) 밭이 주요 대체수단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영토 내 막대한 자원 접근권을 들고 거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아프간에는 구리, 리튬, 철광석 등 광물이 풍부하다. 특히 국제사회가 눈독 들이는 희토류가 140만 톤이나 묻혀 있다. 1조~3조 달러 규모다. 희토류는 전자제품부터 전기자동차, 인공위성, 항공기까지 첨단 제품에 들어가는 필수재인 만큼, 이를 고리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벌써 중국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미국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의 샤마일라 칸 신흥국 부채담당 국장은 “탈레반이 희토류로 국제사회에 ‘위험한 제안’을 해올 수 있다”며 “무장조직이 아프간을 점령한 직후 중국이 빠르게 이들의 집권을 승인한 것도 매장자원이 이유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중국이 아프간 희토류 접근권을 키워 미국과의 첨단 산업 패권 경쟁에서 유리한 패로 활용할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는 의미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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