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전 사우디 집중 타격
▶ 후티 35만 병력도 위협
▶ 미 군사지원 거부에 균열
▶ 친트럼프 노선 리스크로 석유시설·후티 사이 딜레마
서구식 발전을 꿈꾸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이란 전쟁 장기화로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에 대적하기 위해 홍해(바브엘만데브해협)와 동서 파이프라인, 두 우회로를 볼모로 잡은 친이란 후티 반군과 그 배후의 이란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그러나 사우디가 믿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확전 부담에 선뜻 사우디의 군사 지원 요청에 응하지 못하고 있다. 중동을 투자처로 탈바꿈하려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프로젝트가 시험대 위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빈 살만 사우디 정권이 이란과 후티 반군,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활동 중인 이라크발 무장세력으로부터 가해질 수 있는 위협 사이에 ‘3각 포위’됐다고 진단했다. 포위의 직접적 원인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일으킨 전쟁이다.
그러나 그 단초는 11년 전 빈 살만의 예멘 내전 참전이 제공했다. 2015년 1월 아버지 살만 국왕 즉위와 함께 국방장관에 오른 29세 빈 살만은 2개월 뒤인 같은 해 3월 예멘 정부군을 지원해 후티 반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2014년 국경을 맞댄 예멘 수도가 친이란 무장세력인 후티 반군에 점령당하자 내린 조치였다. 그러나 전황은 빈 살만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7년 뒤인 2022년 총리가 된 빈 살만은 후티와 휴전을 맺고 예멘 내전에서 발을 뺐다.
‘예멘 참전’은 그의 발목을 잡는 셈이 됐다. 아흐메드 나기 카네기재단 연구원은 2022년 보고서에서 “(사우디의 개입은) 반 사우디 감정을 키우고 후티와 이란 사이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켰다”고 분석했다. 사우디에 대한 후티의 반감은 올 2월 발발한 미국·이란 전쟁 국면에서도 계속 뇌관으로 작용했다.
후티도 예전의 후티가 아니다. 후티의 병력은 최대 35만 명으로 추산되며 탄도미사일과 공격 드론 등 각종 무기를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은 이란으로부터 지원받은 것들이다. 후티 반군은 이란에서 부품을 수입해 자체 생산한 무기도 전투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란전에서 확인된 비대칭 전략이 사우디와 후티 간 전투에서도 먹혀들고 있다. 지난해 기준 사우디는 군사비가 832억 달러로 세계 8위이며 첨단 미국·유럽 무기들도 갖춘 군사 대국이지만 후티의 게릴라전에 밀리는 것이다.
사우디와 후티 간 무력 충돌 속 이슬람 최고 성지 메카에도 처음으로 공격 위협 경보가 발령됐다. 사우디 민방위국은 15일 메카를 비롯해 제다, 타이프 지역에 공격 가능성을 알리는 경보를 발령했다. 이슬람 성지 메카에 공격 위협 경보가 울린 것은 중동 전쟁 발발 이후 처음이다.
중간선거가 급한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와 거리를 두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자국을 방문한 브래드 쿠퍼 미 중부사령관을 직접 맞이하며 공을 들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빈 살만 왕세자의 두 차례 군사 지원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사우디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온적 태도에 좌절과 실망을 느끼고 있다”고 짚었다.
사우디가 미국의 ‘안보 우산’ 내에 머무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사우디와 미국은 밀월 관계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미국과 전략방위협정을 체결했고 올 7월에는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 가능성까지 열어둔 원자력협정을 미국과 맺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원자력협정 승인 조건으로 이스라엘 주도의 중동 질서인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할 것을 사우디에 요구하면서 진전이 멈춘 상태다. AP통신은 사우디를 산유국을 넘어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 탈바꿈하기 위한 빈 살만 왕세자의 10년 노력이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와 마주쳤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