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김의 영화세상]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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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일본의 젊은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2021년 “우연과 상상”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더니,  칸 영화제에서는 “드라이브 마이 카”로

각본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라섰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칸 영화제 대상 후보였고 각종 영화제에서수상 행진을 계속했는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후보였고 국제영화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첫 일본 영화이기도 하다.  3시간에 달하는 긴 상영 시간에 스토리가 전개되며 천천히 포개지는 인물간의 갈등, 느린 호흡과 쓸쓸한 겨울 풍경 등 일본 영화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임에도 몰입하며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명망있는 연극 배우이며 연출가인 ‘가후쿠’와 아름답고 재능있는 극작가 아내

‘오토’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이상적인 부부이다. 오토는 남편과 잠자리를 하면서 새로운 스토리를 잉태하고 말로 들려준다. 다음 날, 가후쿠가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면 오토는 정리해서 각본으로 만든다.

오토는 가후쿠가 연기할 연극의 대사를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해서 테이프로 만들고 가후쿠는 차를 운전하면서 아내의 낭독에 맞춰 자신의 대사를 연습한다. 가후쿠가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공연한 날, 오토는 남편에게 젊은 배우 ‘다카츠키’를 소개한다. 출장이 취소되어 일찍 돌아온 가후쿠는 아내와 젊은 남자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고 조용히 나온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 오토가 남편에게 할 말이 있다고 말하자  불안한 가후쿠는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가는데 뇌출혈로 쓰러져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아내의 장례식을 치루고 가후쿠는 “바냐 아저씨”를 공연하다 감정적 붕괴를 겪고 더 이상 연기를 할 수 없게 된다. 2년후, 가후쿠는 홋카이도 극단의 초청으로 다국적 언어로 연기하는 “바냐 아저씨”의 연출을 맡게 된다. 자신이 15년간 운전해 온 1987년산 빨간 사브 900터보를 몰고 홋카이도로 간 가후쿠는 규정상 운전수를 고용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극단에서 고용한 젊은 운전수 ‘마사키’는 말이 없고 무표정하지만 노련한 운전 솜씨로 가후쿠의 신임을 얻는다.

가후쿠는 오디션을 통해 일본, 한국, 중국, 러시아 배우들을 캐스팅한다.

가후쿠는 오토가 소개했던 다카츠키가 지원하자 그를 주인공 바냐역에 , 바냐의 조카 소냐역에는 청각장애를 가진 한국 배우를 캐스팅한다. 영화는 상당 부분 배우들의 대본 리딩 장면과 연기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각국 언어로 대사를 하고 게다가 수화로 연기하는 소냐를 보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물들의 사연과 상처와 두려움등이 드러난다.

가후쿠를 부러워하는 다카츠키에게 가후쿠는 아내가 매번 새 작품을 쓸 때마다 작품을 함께 한 남자 배우와 잠자리를 하고 작품이 끝나면 관계도 끝내 온 사실과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해온 자신의 얘기를 들려준다.

다카츠키는 돌발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데 주인공이 없어진 극단측은 가후쿠에게 바냐역을 부탁한다. 가후쿠는 마사키에게 그녀 고향인 홋카이도에 가보자고 한다. 마사키는 오래 전 산사태로 집이 흙더미에 묻혔을 때 자신을 학대하던 엄마를 놔두고 홀로 빠져나온 일을 고백한다. 가후쿠도 아내를 솔직하게 마주하지 못한 채 분노와 배신감으로 살아 온 자신의 위선을 말한다. 눈 속에 파묻힌 마사키의 무너진 집터에서 가후쿠와 마사키는 자신들의 상처를 직시하고 서로를 위로한다. 돌아온 가후쿠와 배우들은  감동적인 “바냐아저씨”를 무대에 올린다.

보고 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배우들이 각자 다른 언어로 연기하는 “바냐 아저씨” 무대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자동차 안에서 가후쿠가 오토의 테잎을 들으며 대사 연습을 하고 묵묵히 운전하는 마사키가 자주 등장하는데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모든 배우들이 뛰어나고 특히 마사키의 공허한 눈동자는 삶의 무게가 아프도록 느껴진다. 한국어 수화로 놀라운 연기를 보여 준 박유림 배우의 발견은 이 영화의 큰 수확이다. 사색적이고 아름답고 희망을 주는 특별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