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화재에 서대문, 마포 일상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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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KT 아현빌딩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나 화재현장 일대에 통신장애가 발생했다. 화재 현장 인근 카페에서 가게 사장이 통신장애로 인한 에러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카드결제·인터넷 거래 중단, 경찰·병원망도 먹통

 

지난 24일 발생한 서울 KT 아현지사 화재로 서대문과 마포 일대를 중심으로 일상이 멈춰섰다. 모세혈관처럼 사회 곳곳에 뻗어있는 통신망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는 IT(정보통신) 강국이 화재 사고 한 번에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분신처럼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전화·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기능을 넘어선 지 오래다. 카드결제는 물론 금융거래, 내비게이션, 음악재생 등을 담당해온 스마트폰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시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법학전문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김모(24) 씨는 면접을 마치고 아버지를 만나려고 했으나 서로 연락이 안 돼 한참을 헤맸다. 김 씨는 “도시한 복판에서 조난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며 “사람이 무력해진다는 게 뭔지 느꼈고, 통신이 잘못되면 정말 큰일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자영업을 하는 고석훈(31)씨는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이 먹통이 돼 깜짝 놀랐다”며 “뉴스도 못 보니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과도 만날 수 없고, 불편한 수준을 넘어서 공황상태에 빠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장사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자영업자들에게는 더 큰 타격이었다. 마포구 공덕역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허모(45) 씨는 “카드결제가 안 되는데, 근처 현금인출기도 고장 났다 보니 손님들이 그냥 발을 돌리더라”며 “어제 낮에는 장사를 거의 못 했고 지금도 손님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KT 기지국 화재로 현금만 받습니다’라는 안내 글귀를 적어놓은 마포구의 한 숯불 갈빗집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모(70) 씨는 “카드 결제도 못 하고, 전화로 예약도 못 받으니 답답하고 속이 터진다”며 울상을 지었다. 트위터 아이디 ‘kitty****’는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에 이동통신이 안 되면 나만 불편한 일인 줄 알았는데 주말 장사해서 버텨야 하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이번 사고가 재난 수준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촌각에 생사가 오가는 병원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병원 전산망이 멈춰 선 것이다.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한 의료진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의료진들이 KT 휴대전화를 쓰는데 전화 자체가 안되니 응급상황에서 서로 콜을 못 해서 원내 방송만 계속 띄워야 했다”며 “이러다가 사람 하나 죽겠구나 싶었다”고 토로했다. 신고가 떨어지면 신속히 출동해야 하는 일부 파출소에서도 불편을 겪어야 했다. 서울 중구의 한 파출소에서는 전화뿐만 아니라 인터넷 내부망도 접속이 안 됐다. 112 신고가 접수되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무전으로 하달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지만, 일반전화로는 신고가 불가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실제로 화재 영향이 미친 서울 서대문·마포·용산경찰서는 화재 이후 장시간 경비전화(내부 전화망)와 일반전화, 지방경찰청과 연결된 112 신고시스템이 마비됐다가 이날 대부분 복구됐다. 112신고 처리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전날 갑자기 휴대전화가 불통되자 일부 지역 공중전화에 긴 줄이 늘어선 풍경을 봤다며 신기해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공중전화 써본 지 오래됐는데 얼마를 넣어야 하나”, “공중전화를 이럴 때 쓰는구나” 등 아예 공중전화 자체를 생소해하는 젊은 층 반응도 많았다. 도시재난연구소 우승엽 소장은 “모든 게 연결된 ‘초연결사회’에서는 한 분야에서 발생한 사고가 다른 분야로 전파돼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듯 막대한 피해를 낳는다”며 “사고가 없는 시스템은 만들 수 없으니 ‘플랜B’를 미리 마련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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