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네 이름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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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 교회 담임)

 

“네 이름이 무엇이냐?” 단순히 이름을 묻는 질문이 아니다. 정체를 묻는 질문이다. ‘너는 누구냐’고 묻는 것이다. 야곱이 얍복 강 나루에서 정체 모를 누군가와 싸웠다. 긴 싸움이 끝나고 그가 야곱에게 이름을 묻는다. “야곱이니이다.” 20년 전, 아버지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에서’라고 답했던 그였다. 에서로 살고 싶었던 야곱의 정체가 20년 만에 밝혀진다.

갈릴리 호수 건너편 거라사인의 한 지방, 귀신 들려 무덤 사이에 살던 한 사람이 달려와 예수 앞에 절하며 큰 소리로 외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제자들이 그토록 깨닫지 못한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폭로였다. 그에게 예수께서 물으신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역시 정체를 묻는 질문이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그를 괴롭히던 존재의 정체가 밝혀졌다. ‘군대(레기온)’는 약 6,000명으로 편성된 로마군 부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체가 더 밝혀진다. 이 귀신의 배후에 로마가 있다. 그 지역 일대를 군대의 힘으로 다스리며 압제하던 로마 제국의 정체를 마가복음의 저자가 폭로한다.

세계가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엄중히 물어보자.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나라의 대통령을 비롯하여 코로나 19(COVID-19)를 아직도 ‘Chinese Virus’ 혹은 ‘우한폐렴’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바이러스에 지역명이나 사람 혹은 동물의 이름을 붙일 경우 낙인을 찍는 위험이 있기에 쓰지 않기로 한 WHO(세계보건기구)의 정책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는 이들이다. 정체를 밝히는 일은 이름을 바로 부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코로나 19 사태로 종교의 정체가 질문에 봉착했다. 신천지라는 사이비 종교는 물론, 기도하면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다며 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들, 교인들에게 소금물을 분사하다가 많은 감염자를 낸 어느 교회 등을 보며 사람들은 종교인들을 향해 묻고 있다. 대체 당신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향해서도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이다. 예배당에서 예배할 수 없게 되고 온라인 실황 예배가 대안으로 떠오르며 성찬과 식탁 교제마저 할 수 없게 되자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예배는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

자신의 정체를 아는 혹은 찾는 이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예배당을 ‘마스크 공장’으로 만들어 이웃을 돕는 교회, 이주 노동자들이나 외국인 학생들에게 마스크 나눠 주기를 실천하는 교회, 온라인 예배가 어려운 교회를 돕자는 온라인예배 도우미 파송 운동, 실직자들을 위해 성금을 하는 교회들 등의 소식이 바이러스의 공포를 뚫고 들려온다. 예배당에 모이지 못해도 서로 안부를 묻고, 노인들과 환자들을 돌아보고, 어색한 형태의 예배지만 정성스럽게 드리고자 애쓰는 모습 하나하나, 모두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나름의 대답들이다.

이 낯선 시절을 통과하며 우리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는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이 괴물 같은 바이러스가 다 폭로할 것이다. 예배당에 모이지 못하게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예배자인가. 직장을 잃고 가게 문을 닫는 교인들이 생기는 이 때 우리는 정말 예수 안에 한 가족인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기 전부터 이미 모두가 거리를 두었던 사회적 약자들에게 우리는 과연 이웃인가.

바이러스의 정체는 밝혀졌다. 이제는 우리의 정체가 밝혀질 차례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