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백선엽 조문정국에 다시 두 쪽 난 서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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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서울 도심 광장에서 진보와 보수, 두 진영의 추모 행렬이 각각 이어졌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12일 시민들이 거리두기를 하며 조문을 하고 있다(위 사진). 비슷한 시간 직선거리로 700여m 떨어진 광화문 광장에서는 고 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가 보수 단체에 의해 설치돼 조문을 하려는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왕태석 기자]

북측엔 백 장군, 남측 시청앞 광장엔 박 시장 분향소

11일 오후7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내 세종대왕상 앞에 대형 텐트 6동이 들어섰다. 육사구국동지회 등 보수단체가 전날 세상을 떠난 백선엽 장군을 기린다며 기습적으로 시민분향소를 차린 것이다. 이로써 광화문 네거리를 사이에 두고 북쪽은 백선엽 장군의 분향소가, 남측 시청 앞 광장은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가 들어서 대치 전선을 그었다.

서울 도심의 광장이 또다시 갈라졌다. 지난해 ‘조국 사태’에서 광장을 둘로 나눴던 보수와 진보 진영이 이번에는 각자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을 따로 추모하겠다며 광장에서 대치했다. 북측 광장 주변에서는 친일 행적 논란을 둘러싼 공방이 오갔고, 시청 앞 광장 주변에서는 성추행 고소 사건을 이유로 추모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보수와 진보의 분열에 역사, 젠더 논쟁까지 겹치면서 두 고인을 추모하는 광장은 사분오열이 돼 버렸다.

발인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시청 앞 박 시장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박주형(35)씨는 “10년 가까이 서울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준 시장님의 노고를 생각하면 3년상이라도 치르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마련된 온라인 헌화에는 50만여 명의 네티즌이 동참해 박 시장의 넋을 기렸다.

하지만 박 시장의 장례방식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온·오프라인으로 번져갔다.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러지는 5일장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이날까지 50여만이 동참했다. 여성단체 중심으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박 시장에 대한 추모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반대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시청 앞에서는 이를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하기도 했다. ‘박 시장의 사고를 의인(義人)화 하지 말라’고 적힌 피켓을 든 한 여성이 1인 시위에 나서자 박 시장 지지자들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자칫 충돌도 이어질 뻔했다.

12일 오전부터 공식 조문이 시작된 광화문 북측 광장에는 백선엽 장군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졌다.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 국민장 시민분향소’라는 현수막이 걸린 분향소에는 50, 60대 이상 중장년층 뿐아니라 20대 청년층도 적잖게 눈에 띄었다.

백 장군의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박 시장 시민분향소와 비교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박 시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5일장을 치르면서 구국의 영웅을 기리기 위한 분향소는 당국이 금지했다는 불만이다. 실제 이날 분향소를 설치하는 과정에 경찰의 저지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분향소 설치해 동참했다는 김효석씨는 “우리 민족의 근간을 세운 6·25전쟁 영웅은 국민장조차 치르지 못 한다는 게 너무 통탄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에 대한 반대 목소리로 북측 광장 주변도 편치는 않았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고인이) 전쟁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숱한 세월이 지나도록 친일 행적에 대해 사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 등 의전 철회를 촉구했다. 5개 독립운동가 선양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회장 함세웅 신부, 이하 항단연)도 “(고인은)간도특설대 복무하며 독립군 토벌하던 악질 친일파” 라며 대전현충원 안장 결정 취소를 촉구했다.<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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