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클래식 음악계의 우먼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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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희(인디애나 음대 반주과 객원교수)

1년전 샌프란시스코오페라(SFO)의 총감독 매튜 실벅이 한국인 지휘자 김은선을 2021년 8월부터 5년간 샌프란시스코오페라 음악감독으로 발탁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 대형 오페라 컴퍼니 최초의 여성 음악감독으로 음악계에 커다란 일이라고 뉴욕 타임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샌프란시스코 클래식 보이스 등에서 보도했다. 1923년에 설립된 샌프란시스코오페라의 네 번째 음악감독이자 첫 번째 여성 음악감독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여성이, 그것도 동양 여성이 주요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을 맡게 된 것은 파격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여성 지휘자는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김은선 지휘자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최초 음악감독으로 발탁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는 여성 지휘자가 아닌 한 사람의 지휘자로 불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작년 11월에 타계한 세계적인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한 가지 일화를 보면 지휘 분야가 얼마나 남성에게 국한되어 있고, 금녀의 벽이라고까지 불렸는지 알 수 있다. 얀손스는 2017년 11월 텔레그레프에 “여성 지휘자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하지만 세계가 변해가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제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해왔느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얀손스의 여성 지휘자에 대한 일부 발언은 공분을 샀고, 몇 주 후에 그는 공개 사과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남성이 절대적으로 지휘 분야에서 활약하는 시대를 살아왔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지휘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훨씬 많다. 여성이 지휘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모든 여성 동료들과 지휘자를 꿈꾸는 어린 여성들을 지지한다. 우리 모두는 공통의 목표 안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가 깊게 사랑하는 그것, 예술적인 형태 안에서 사람들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것은 음악이다.”

시대가 흘러 이제 지휘 분야에서도 여성이 음악감독을 맡는 등 점점 여성이 클래식 음악계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요즘, 문득 10여년전의 일이 떠올랐다. 뉴욕에서 공부할 때 세계적인 첼리스트 데이비드 소이어의 클래스를 반주한 적이 있다. 너무나도 존경하는 그분의 레슨이 정말 좋아서 반주하는 것으로도 많은 것을 배웠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는데, 유독 여학생들보다는 남학생들한테 더 엄격하게 대하셨던 게 궁금해서 그분께 여쭤본 적이 있다. 여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면 음악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지만, 남학생들은 졸업하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더 혹독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얀손스처럼 그분이 살아온 시대를 생각하면 물론 이해는 가지만, 그때의 나로서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소이어에게 배운 여성 첼리스트들이 미국 전역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얼마전에 비올리스트 친구와 리싸이틀을 계획하며 무슨 곡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서로 연주하고 싶은 곡을 하나씩 얘기하기로 했다. 그 친구는 클락 소나타를 선택했고, 나는 데크룩 소나타를 선택했다. 우연히 우리 둘 모두 여성 작곡가를 선택한 게 아닌가. 클락, 데크룩이 활동했던 20세기 초만 해도 여성 작곡가에 대한 편견이 있었고, 여성 작곡가들이 곡을 출판할 때는 남성 이름으로 가명을 쓰기도 했던 시절이다. 100년 남짓이 지난 현재, 여성 작곡가, 여성 연주자라고 불리는 일은 드물지만, 아직도 여성 지휘자는 특별하게 생각되고 기삿거리가 되고 있다. 지휘자 김은선의 말처럼 언젠가는 여성 지휘자가 아닌 한 사람의 지휘자로서 불리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음악은 인종, 성별, 연령에 차별 없는 우리 모두의 언어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