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KAIST 캠퍼스는 싱그러운 초록의 물결로 가득해, 걷는 발걸음마다 계절의 생동감이 묻어났다. 6일 오후 3시, 대전 유성구 대학로의 심장부에 위치한 박현욱 명예교수의 KAIST N24 연구실은 평생을 일궈온 수많은 책과 논문들을 갓 정리한 직후여서인지,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완성된 아주 정갈한 풍경이었다. 그 고요한 정적 속에서 박 교수는 지난 삶의 궤적을 하나하나 정리하듯 조용히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1988년 약관의 나이에 국내 최단기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천재 과학자’의 눈빛은 이제 날카로운 지성을 넘어 온화한 성찰이 덧입혀진 채 더욱 깊고 그윽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찰나의 신호에서 생명의 지도를 읽어내다
박 교수의 일생은 보이지 않는 신호를 해석하여 세상에 실체를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그의 주전공인 자기공명영상법(MRI)은 신체 내부의 파동을 잡아내어 정밀한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그는 6배 빠른 MRI 영상 획득 기술을 세계 최초로 선보이며 인류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헌신했다. “공학이란 결국 인간을 위한 학문입니다. MRI 기계 안에서 환자가 느끼는 그 짧은 찰나의 공포를 줄여주기 위해 우리는 더 빠른 신호 처리 기술을 연구했죠.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성취가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생명의 존엄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공학자의 언어가 어느새 시인의 은유로 변한다. 그는 평생을 두고 ‘디테일’의 힘을 믿어왔다. 아주 미세한 잡음(Noise) 속에서 진실한 신호(Signal)를 가려내는 작업, 그것이 그가 40여년간 연구실을 지켜온 방식이다. 이제 그는 그 정밀한 시선을 연구실 너머, 대학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미래로 돌리고 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미래를 설계하다
박 교수는 단순히 연구에만 매몰된 학자가 아니었다. 학과장부터 교무처장, 교학부총장, 연구부총장까지 KAIST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대학 행정의 뼈대를 세웠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신호’를 들었다. 학생들의 고민, 교수들의 열망, 그리고 시대를 선도해야 하는 대학의 사명감까지.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곳이 아닙니다. 미래 세대가 자신만의 ‘파동’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어야 하죠. 저는 KAIST가 세계 1등 기술을 가진 대학을 넘어, 세상을 치유하는 가치를 창출하는 대학이 되길 꿈꿉니다.” 그가 그리는 미래는 차갑고 건조한 기술의 집합체가 아니다. 인문학적 온기가 흐르는 기술, 사람의 마음을 먼저 읽는 혁신이다. 그가 최근 대학의 나아갈 길에 대해 깊은 화두를 던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개인의 영달을 위한 출사표가 아니라, 평생을 몸담은 공동체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의 발로다.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본질의 역습’
박 교수는 최근 본지 특파원이 집필한 저서의 제목처럼, 우리 사회에 ‘본질’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효율과 속도만이 강조되는 시대에, 그는 오히려 ‘기다림’과 ‘사유’의 가치를 꺼내 든다.
“청년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실패는 결코 오답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원하는 신호를 찾기 위해 걸러내야 하는 필연적인 잡음일 뿐이죠. 그 잡음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본질을 지켜낼 때, 비로소 세상을 울리는 큰 공명이 시작됩니다.” 그의 교육 철학은 명확하다. ‘지식의 양’보다 ‘사유의 깊이’를 키워주는 것. 제자들이 삼성전자 휴먼 테크 논문 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비결도, 결국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힘을 길러주었기 때문이다.
40년 전 최단기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신문 1면에 실렸던 그 청년 과학자의 모습 위로, 이제는 공동체의 내일을 걱정하는 노교수의 실루엣이 겹쳐진다. 그는 이제 ‘성취’가 아닌 ‘헌신’의 길을 걷고자 한다. 그가 고민하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 지도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그것은 차가운 MRI 영상이 아니라, 수많은 학생의 꿈이 살아 숨 쉬는 따뜻한 입체 지도가 아닐까.
찰나의 미학, 잡음 속에서 진실한 신호를 가려내다
박현욱 교수가 걸어온 길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실체’를 증명해 내기 위한 고독한 투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천착해 온 MRI(자기공명영상)는 육안으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신체의 깊은 내면을 파동의 언어로 번역해 내는 작업이다. 연구실 벽면에 걸린 초기 연구 데이터들을 바라보며 그는 잠시 회상에 잠긴다. 1980년대 초, 불모지와 다름없던 한국의 의공학 현장에서 그는 무모할 만큼 순수한 열정으로 파동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연구는 단순히 기계를 만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주의 원리를 인간의 몸이라는 작은 소우주에 투영해 보는 철학적 과정이지요. MRI 신호를 측정해 보면 수많은 잡음(Noise)이 섞여 있습니다. 공학자의 숙명은 그 혼돈 속에서 생명의 실체인 진실한 신호(Signal)만을 정교하게 추려내는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한 확신이 서려 있다. 그가 개발한 ‘6배 빠른 MRI 영상 획득 기술’은 단순히 속도의 혁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폐소공포증과 싸우며 기계 안에서 숨을 죽여야 했던 환자들에게 건네는 공학자의 따스한 배려였다. 1분 1초가 생사를 가르는 응급 환자들에게는 그 짧아진 시간이 곧 생명의 희망이 되었다. 이러한 정밀함은 그의 삶 전반을 관통한다. 그는 2012년 특허 기술 이전 우수 표창을 받고, 수차례 KAIST 연구상을 휩쓸면서도 결코 숫자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에게 기술은 언제나 사람을 향해야 하는 ‘따뜻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경계의 지휘자, KAIST의 불협화음을 화음으로 바꾸다
박 교수의 이력서를 훑어 내려가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뛰어난 연구자인 동시에 탁월한 행정가이자 리더였다. 교무처장, 교학부총장, 그리고 연구부총장까지. 대학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의 혈관을 누구보다 깊숙이 들여다본 인물이다. “부총장 시절, 제가 한 일은 대단한 혁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소리를 내는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것을 KAIST라는 이름의 거대한 오케스트라 안에서 조화로운 화음으로 바꾸는 조율사(Tuner) 역할을 하려 노력했을 뿐입니다.” 그는 연구부총장 시절, 연구자들이 행정적인 번거로움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기술의 첨단을 걷는 대학일수록 그 안을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엄격한 원칙으로, 때로는 인자한 스승의 마음으로 그는 KAIST의 내실을 다져왔다. 최근 그가 대학의 미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어쩌면 그가 평생 연구해 온 MRI의 원리와도 닮아있다. 조직 내부의 보이지 않는 병폐를 직시하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가장 정밀한 처방을 고민하는 것. 그것은 40년 KAIST 맨(KAIST Man)으로서 그가 짊어진 숙명적인 책임감이다.
청년의 가슴에 심는‘사유의 씨앗’
인터뷰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제자들과 미래 세대에게로 옮겨갔다. 박 교수의 제자들은 유독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삼성전자 휴먼 테크 논문 대상에서 대상과 금상을 휩쓴 이들의 뒤에는, 언제나 ‘질문하는 법’을 먼저 가르친 스승 박현욱이 있었다. “저는 제자들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을 던지죠. 지식의 양은 AI가 훨씬 앞설지 모릅니다. 하지만 질문의 깊이, 즉 사유의 힘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영역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기술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무엇을 위해 이 기술을 쓰는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너무 빠른 결과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과학적 성취는 ‘찰나의 영광’보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오기 때문이다. 1988년 신문에 보도되었던 그가 2년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던 성과 역시, 실은 그 이전의 무수한 시행착오와 밤샘 연구가 응축된 결과물이었다. 그는 말한다. 실패는 ‘잘못된 신호’가 아니라 ‘진짜 신호를 찾기 위한 데이터’라고. 그는 이 시대의 고단한 청춘들에게 조금은 느리더라도 자신의 속도로 파동을 만들어가는 법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본질의 역습,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 올리는 희망의 파동
인터뷰가 무르익을수록 박현욱 교수의 시선은 창밖 KAIST 교정을 넘어 더 먼 곳,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시대의 근원적인 아픔을 향해 있었다. 그는 최근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화두로 ‘본질’을 꼽았다. 그가 평생을 바친 공학의 세계에서 본질이란 곧 ‘가장 순수한 신호’를 의미한다. 잡음이 섞이지 않은, 생명 그 자체가 내뿜는 태초의 소리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껍데기에 매몰되어 왔습니다. 대학은 취업률이라는 잡음에, 학생들은 스펙이라는 배경소음에 귀를 빼앗겼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모든 것을 대체하는 시대가 올수록, 결국 승리하는 것은 ‘대체 불가능한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최근 구상 중인 대학 경영의 철학을 슬며시 내비쳤다. 그것은 단순히 건물을 짓고 예산을 확보하는 물리적인 확장이 아니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파동을 존중하고, 그들이 세상과 공명할 수 있는 ‘최적의 채널’을 열어주는 일이다. 부총장 시절, 그는 수많은 갈등의 현장에서 늘 이 본질을 붙잡았다. 이해관계라는 잡음을 걷어내고 나면, 결국 모두가 KAIST를 사랑하고 과학의 발전을 열망한다는 단 하나의 순수한 신호만이 남는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체득했다.
황금빛 잔조(殘照)가 건네는 마지막 서시
어느덧 연구실 안쪽까지 오후 5시의 긴 햇살이 비스듬히 스며들어 깊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1988년 1월, 앳된 얼굴로 신문 인터뷰에 응했던 청년 박현욱의 흑백 사진 속 열기 띤 눈빛이, 이제는 인자한 성찰을 머금은 채 내 앞에 앉아 있는 노교수의 눈빛과 조우한다. 최단기 박사 학위라는 화려한 박제된 타이틀을 뒤로하고, 그는 지난 40년을 오직 연구와 교육이라는 고독하고도 치열한 외길에 쏟아부었다. “다시 40년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저는 똑같은 길을 걸을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신호를 쫓아 밤을 지새우고, 제자들의 성장에 함께 기뻐하며, 과학이 어떻게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 시간들이 제 생의 가장 아름다운 화음이었으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그의 옷매무새는 정갈했고, 마주 잡은 손은 따뜻하면서도 단단했다. 그것은 평생을 차가운 금속성 기계와 씨름하면서도 끝내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은 공학자의 손이자, 이제는 그 축적된 지혜로 더 큰 세상을 품으려는 리더의 손이었다.
연구실 문을 나서자 KAIST의 오후 5시는 낮의 활기와 저녁의 정적이 교차하는 묘한 긴장감을 내뿜고 있었다. 아직 불빛이 켜지기 전의 고요한 연구실 창가에는 그가 평생을 두고 추적해 온 학문적 경험과 연구의 총체적 정수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우리는 이제 그의 이 거대한 경험의 자산이 단순히 개인의 성취를 넘어, 차세대 대한민국 의공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6배 빠른 MRI 기술을 넘어,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그만의 ‘공학적 서사’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박현욱이라는 이름 석 자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공학적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의 끝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예의이며, 가장 차가운 이성으로 빚어낸 가장 뜨거운 사랑의 기록이다. 그의 앞날에 그리고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KAIST와 대한민국 의공학의 미래에 찬란한 공명(Resonance)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시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