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일, 서울역사의 번잡함이 창밖으로 흐릿하게 번지는 오후, 낡은 가죽 가방 하나를 곁에 둔 박창욱 대표가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40년. 그가 글로벌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격(格)’을 연구해 온 시간이다. 대우그룹의 치열했던 현장부터, 故 김우중 회장의 뜻을 이어 1,600여 명의 글로벌 청년을 길러낸 GYBM 사업까지, 그의 삶은 늘 ‘대한민국 청년이 세계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최근 출간한 『당신의 무의식을 브랜딩하라』는 그 평생의 답안지이자, 이제 막 세계 무대로 나서는 모든 이들을 위한 정밀한 나침반이다.
40년 현장의 무게를 담은 리더십
박창욱 대표는 대우그룹 종합상사 인사·기획부 시절, 낯선 문화와 규칙 앞에서 매번 당황했던 자신의 청년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는 누구도 나침반을 주지 않았습니다. 왜 명함을 두 손으로 건네야 하는지, 왜 식사 중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죠. ‘결국 매너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상대의 리듬을 읽고 나의 리듬을 맞추는 고도의 비즈니스 생존 전략’입니다.”
그는 현장에서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가 결국 ‘사람을 읽는 일’로 귀결되었다고 말한다. 리더십이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 서서 행동하는 태도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에티켓이라는 입장권이 없으면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매너라는 마스터 키가 없으면 파트너십의 문을 다시 열 수 없음을 역설했다. 40년간 그가 길러낸 수많은 청년이 세계 무대에서 품격 있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사람을 향한 세심한 관찰’을 리더십의 본질로 삼았기 때문이다.
‘4가지 과학적 렌즈’로 매너를 해독
기존의 에티켓 서적들이 ‘무엇(What)’을 해야 하는지만 나열했다면, 박 대표는 ‘왜(Why)’에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가 진화심리학, 메타인지, 행동과학, 문화인류학이라는 네 가지 렌즈를 빌려온 이유다.
“이유를 모르면 규칙은 짐이 됩니다. 1주일이면 잊히죠. ‘하지만 원리를 이해하는 순간, 에티켓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본능이 됩니다.”
그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방대한 글로벌 데이터와 심리학 논문들을 꿰어맞췄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30만 년간 새겨온 ‘안전한 존재’의 기준을, 메타인지는 복잡한 관계의 판을 읽는 시야를, 행동과학은 무의식에 신뢰를 각인하는 방법을, 문화인류학은 각 나라의 생존 방식이 만든 예절의 뿌리를 설명한다. 그는 이 4가지 학문적 접근이 매너를 단순한 ‘교양’에서 ‘글로벌 생존 기술’로 격상시킨다고 강조한다. 특히 113개의 사례를 통해, 규칙이 없는 돌발 상황에서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품격의 알고리즘’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강력한 차별점이다.
첫 0.3초의 찰나, 신뢰의 앵커를 심는 법
“면접관으로 수백 명을 만나며 깨달은 건, 상대의 뇌는 0.3초 만에 그 사람의 운명을 이미 판정한다는 사실입니다.”
박 대표는 이 짧은 순간이 상대의 뇌에 ‘안전 필터’를 통과시키는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악수의 강도, 눈맞춤의 길이, 이름을 부르는 타이밍은 결코 사소한 디테일이 아니다. 그는 이를 ‘긍정적 앵커(Anchor)를 심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첫 만남에서 심어진 긍정적 각인은 이후의 모든 경험을 해석하는 가장 강력한 필터가 됩니다.’
따라서 그는 첫 만남을 운에 맡기지 말고 철저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악수를 청하고, 이름을 한 번 더 반복하며, 명함을 건네는 자세까지 모든 비언어적 신호가 ‘나는 당신의 동맹’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실력이 훌륭해도 첫 0.3초의 인상이 나쁘면 그 실력을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비정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박 대표가 전하는 ‘첫 만남의 설계법’은 어쩌면 승리를 위한 필수 전략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공간의 세대 갈등, 어떻게 ‘연결의 알고리즘’
메신저 ‘읽씹(읽고 씹기)’과 퇴근 후 업무 카톡은 오늘날 직장 내 가장 뜨거운 감자다. 박 대표는 이를 두고 “디지털은 같은 도구지만, 선배에게는 ‘확실한 소통’의 도구이고 후배에게는 ‘침범당하는 개인 공간’이라는 인식의 괴리가 갈등의 본질”이라고 짚었다. 선배는 읽음 표시가 즉각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신호라고 믿지만, 후배는 그것이 그저 기술적 상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갈등을 해결할 열쇠로 ‘메타인지적 배려’를 제시한다. 선배는 야간·주말 업무 메시지 전 ‘예약 발송’을 활용해 후배의 저녁을 지켜주고, 후배는 응답이 늦어질 때 “확인했습니다. 잠시 후 답변드리겠습니다”라는 짧은 메시지로 선배의 불안을 없애주는 것.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예절이다. 그는 “호칭 하나, 메신저 응답 하나가 조직의 온도를 결정한다”며 단순히 룰을 강요하기보다 서로의 ‘왜(Why)’를 이해하고 팀 내에서 응답의 기준선을 합의하는 과정 자체가 조직의 신뢰를 쌓는 리더십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무대, 낯선 환경에서 청년을 지탱하는 힘
해외 취업 정식 교과목을 개설하고 1,600여 명의 글로벌 청년을 배출한 박 대표는 청년들에게 ‘회복탄력성’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낯선 현장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실패는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다. 그는 최근 언론 기고에서 언급했듯, 위기 상황에서 리더와 청년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찾으려는 의지’라고 말한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데이터입니다.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메타인지의 눈으로 객관화할 수 있는 청년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품격 있는 오뚝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는 청년들이 글로벌 환경에서 단순히 언어 능력을 기르는 것을 넘어, 타인의 문화를 존중하고 자신의 행동이 전체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읽어내는 시야를 길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리더가 청년의 실패를 데이터로 보고 함께 분석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는 리더의 손길이다. 그는 청년들이 비록 낯선 땅에 홀로 서 있더라도, 그 등 뒤를 묵묵히 받치고 있는 ‘배려의 정신’이 있다면 반드시 세계 무대에서 자기만의 길을 개척할 것이라 확신했다.
동서양 소통의 ‘미묘한 온도 차’의 극복
글로벌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오해의 90%는 ‘저맥락(Low-context)’ 문화와 ‘고맥락(High-context)’ 문화의 충돌에서 온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농경 문화권의 한국인과 명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유목 문화권의 서양인이 마주할 때 갈등은 필연적이다.
박 대표는 이 ‘미묘한 온도 차’를 극복하는 실전 팁으로 ‘질문형 반론’을 꼽았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직접적인 부정은 상대를 공격자로 만들지만,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일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라고 묻는 것은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질문은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나의 관점을 전달하는 가장 세련된 반론의 방식입니다.”
그는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상대를 ‘틀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생존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으로 인식하는 순간 소통의 폭이 넓어진다고 말했다. 동양적 겸손이 때로는 자신감 부족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글로벌 무대에서, 자신의 성취를 당당히 인정하되 팀의 기여를 함께 언급하는 ‘글로벌식 화법’을 익히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 무대에서 품격 있는 한국인으로 기억되는 첫 번째 조건이다.
위기를 읽는 눈, 리더의 ‘메타인지’를 훈련하는 법
박 대표는 최근 칼럼을 통해 “찾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위험이 보인다”며, ‘신호감지이론’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리더의 메타인지는 단순히 똑똑한 지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조직이라는 전체 시스템 안에서 지금 내가, 그리고 우리 팀이 어디에 서 있는지 한 발 위에서 내려다보는 냉철한 시각이다. “많은 리더가 위기를 놓치는 이유는 ‘설마’ 하는 방심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장의 미세한 신호는 언제나 낮은 곳에서 먼저 울리죠.” 그는 위기를 읽는 훈련법으로 ‘상황을 객관화하는 질문’을 꼽았다. 내가 지금 내린 결정이 우리 팀 전체의 흐름에 어떤 병목을 만드는지, 혹은 반대로 어떤 활력을 불어넣는지 매 순간 자문하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보고를 잘하는 사람은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사가 결정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며, 리더 또한 팀원이 위험 신호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을 먼저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리더의 메타인지는 독단이 아니라, 팀원들이 던지는 작은 경고 신호를 예민하게 포착해 전체의 항로를 수정하는 겸손한 시야에서 완성됩니다.”
보이지 않는 곳의 품격, ‘히든 아미’를 대하는 자세
책의 3장에서 강조한 ‘히든 아미(Hidden Army)’ 개념은 그의 리더십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무실을 청소하는 분, 음료를 서빙하는 직원, 문 앞의 배달 기사. 박 대표는 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리더는 결코 그 어떤 큰 성과도 지속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상사 앞에서 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서비스직 종사자를 인간 대 인간으로 예우하는 모습,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 수준입니다.” 그는 서비스직을 존중하는 행위가 단순히 도덕적 올바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신뢰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 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약자를 무시하는 강자는 결국 집단 내에서 신뢰를 잃게 마련이며, 반대로 서비스직의 노고를 인정하고 눈인사를 건네는 리더는 조직원들에게 ‘우리는 존중받는 공동체’라는 강력한 심리적 유대감을 심어준다. 그에게 품격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고단함을 헤아리는 시선 끝에 머무는 것이었다. 질문
미주 한인 사회, ‘글로벌 지능’으로 주류와 연대하라
시카고를 비롯한 미주 한인 사회는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치열한 비즈니스 전장이다. 박 대표는 이곳에서 교민들이 겪는 문화적 소외나 오해를 ‘글로벌 지능(Global Intelligence)’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로 진단했다.
“한인 사회가 주류 사회와 더 깊이 연대하려면, 단순히 경제적 성공을 넘어 ‘맥락적 알고리즘’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미주 교민들이 겪는 소통의 장벽을 낮추기 위해 ‘문화적 번역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서양의 저맥락 문화권에서는 명확하고 직접적인 표현이 전문성의 신호가 되지만, 한국식 우회적 화법은 오해를 부르기 쉽다. 박 대표는 교민들이 비즈니스 현장에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현지의 언어와 관습’이라는 옷으로 갈아입힐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차세대 한인들이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글로벌 매너를 결합했을 때,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연대의 힘’이 주류 사회를 움직이는 큰 무기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가 청년들에게 남기고 싶은 유산
인터뷰의 끝에서 그는 40년 전 낯선 땅에서 헤매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무대로 나가는 청년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은지를 고백했다.” 성공은 실력이 문 앞까지 데려다주지만, 매너는 문 안으로 들어가 파트너가 되게 만들고, 평판은 그 문이 다시 열리게 합니다.” 그는 이 명제야말로 자신이 GYBM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에게 평생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말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 청년들이 단순히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직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낯선 땅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끝까지 ‘사람을 향한 예의’를 잃지 않고 세계 앞에서 품격 있는 존재로 서는 것, 그것이 박창욱이 꿈꾸는 미래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아직도 할 일이 많다”며 웃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에티켓을 연구하고, 인공지능과 인문학이 결합한 새로운 교육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는 그의 눈은 여전히 40년 전 처음 상사에서 근무하던 그때처럼 빛나고 있었다. ‘글로벌 현장 40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보낸 그의 여정은, 지금도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작지만 가장 단단한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었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시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