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4일, 초가을의 정취가 막 스며들기 시작한 대전 카이스트 창업원 3층 로비. 제법 가을바람이 통유리창을 넘어 들어와 늦여름의 열기를 부드럽게 씻어내고 있었다. 창업원 3층 로비를 지나 조심스레 연구실 문을 열자, 차가운 반도체 회로도와 복잡한 수식들 사이로 옅은 미소를 띤 배현민 교수가 서 있었다. 단정한 셔츠 차림에 맑고 단단한 눈빛을 한 그에게서는, 다섯 번의 딥테크(Deep Tech) 창업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승부사의 날카로움보다는 사람과 세상을 향한 다정한 온기가 먼저 전해져 왔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험난한 창업 생태계의 최전선을 묵묵히 개척해 온 자타공인 ‘창업의 달인’.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은 화려한 성공 신화가 아닌 한 인간이 가슴 밑바닥에 품었던 깊고 묵직한 ‘절박함’에 대한 성찰이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라는 학문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젊은 교수.
” 반도체와 인공지능 기술이 궁극적으로 향해야 할 곳은 결국 사람의 따뜻함입니다.”
그의 이 한마디는 단순한 공학자의 선언을 넘어, 세상을 치유하고자 하는 구도자의 고백처럼 창업원 로비의 공기를 묵직하게 울렸다. 그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실험실의 연구가 논문으로만 남는다면, 그것은 절반의 완성에 불과합니다.”
평범함을 거부한 청년, 절박함이 피워낸 첫 번째 불꽃
배현민 교수를 끝없는 도전으로 이끈 내면의 동력은 역설적이게도 ‘평범한 삶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청년 배현민은 인텔과 퀄컴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화려한 타이틀 이면에 감춰진, 교외의 안락한 집과 두 대의 자동차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엔지니어의 삶은 그에게 어떠한 가슴 뛰는 기대감도 주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자신의 창의력이 소모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그는, 시카고 도심의 마천루를 누비는 특허 변호사를 꿈꾸며 로스쿨 진학이라는 과감한 돌파구를 찾았다. 하지만 “남이 만든 기술의 뒤치다꺼리 대신, 너만의 창의력을 세상에 온전히 발휘하라”는 지도교수의 뼈 있는 한마디는 그의 항로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그렇게 박사 논문을 쥐고 뛰어든 2001년의 첫 창업 ‘인터심볼’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절박함이 차가운 기술과 만나 세상에 눈부신 불꽃을 튀긴 첫 번째 궤적이 되었다.
고립된 청춘들을 위한 등대, 글로벌 멘토단의 닻을 올리다
그의 시선은 연구실에 머물지 않고 척박한 글로벌 무대에서 분투하는 젊은 후학들을 향해 있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태평양 건너 미국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의 고뇌로 이어졌다. 하버드와 스탠포드를 거쳐 메타(Meta)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했던 필자의 딸이 타국에서 뼈저리게 느꼈듯, 거대한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인재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방향을 잃었을 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줄 ‘멘토’의 존재다. 배 교수는 이러한 짙은 갈증에 깊이 공감하며, KAIST 창업원장으로서 원대한 밑그림을 꺼내 놓았다. 뉴욕과 실리콘밸리를 아우르는 ‘글로벌 멘토단’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성공한 선배 창업가들과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규합하여, 후배들이 벼랑 끝에 섰을 때 실질적인 지혜를 나누고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주겠다는 그의 다짐에는, 고립된 천재들을 기어코 넓은 바다로 이끌겠다는 따뜻한 등대지기의 철학이 단단하게 뿌리내려 있었다.
한계를 돌파한 역발상, 부도체(不導體)로 미래의 혈관을 잇다
그가 주도하는 혁신의 최전선에는 최근 100조 원 규모의 통신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기업 ‘포인트투테크놀로지’의 3세대 케이블, ‘이튜브(E-tube)’가 자리하고 있다. 그의 입을 통해 듣는 기술의 원리는 마치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를 풀어내는 듯했다. 고속 신호를 감당하지 못하는 1세대 구리선의 물리적 한계와, 지나치게 값비싼 2세대 광케이블의 경제적 장벽 앞에서 그는 과감히 ‘부도체(플라스틱, 스펀지)’라는 낯선 역발상을 꺼내 들었다. 유리가 투명하게 빛을 통과시키듯, 전기가 통하지 않는 스펀지 사이로 전자파를 유유히 흘려보내는 마법 같은 기술. 전자의 이동이라는 기존의 강박을 버리고 파동의 흐름에 주목한 이 전환은 비용과 속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잡아냈다. 고정관념이라는 견고한 벽을 허물고 텅 빈 부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그의 집념이, 세상을 더 빠르고 촘촘하게 엮어내는 새로운 시대의 혈관을 기어코 탄생시킨 것이다.
벼랑 끝에서 벼려낸 생존의 미학, ‘짠물 경영’
다섯 번의 타석에 들어서 다섯 번 모두 담장을 넘긴 ‘5타석 5홈런’의 화려한 수식어. 하지만 세상의 환호성 이면에는 숱한 불면의 밤과 뼈를 깎는 고통이 숨 쉬고 있었다.
“창업 초기, 벼랑 끝의 위기에서 기업을 살려내는 것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뼛속까지 고정비를 통제하는 지독한 짠물 경영이었습니다.”
그의 담담한 고백처럼, 연구가 무한한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는 자유로운 예술이라면, 창업은 유한한 자원 속에서 매일같이 생존을 증명해야 하는 치열한 야생이다. 그는 캄캄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순간에도 결코 노를 놓지 않는 법을 거친 시장의 비바람 속에서 몸소 체득했다. 수많은 딥테크 기업들이 거대한 자본의 온기에 기대다 쉽게 스러져갈 때, 그는 오히려 몸집을 바짝 줄였다. 화려한 겉치레나 안락한 사무실 대신, 밤낮없이 돌아가는 서버의 열기와 연구원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초창기의 공간을 묵묵히 채웠다.
“자본의 화려함에 기대기보다 혹독한 절제로 우리의 본질적인 기술력 단 하나에만 모든 에너지를 응축시켰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자기 절제와 위기 관리는 역설적으로 거대한 풍랑이 닥쳤을 때 기업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닻이 되었다. 상처 입은 조개만이 오랜 시간 고통을 삭여 영롱한 진주를 품어내듯, 험난한 개척의 길 위에서 깎이고 패인 그의 숱한 생채기들은 결국 100조 원 규모의 글로벌 통신 시장을 호령하는 흔들림 없는 동력으로 맑게 숙성되었다.
상아탑의 아이디어를 세상의 빛으로, 혁신의 마에스트로
학교라는 든든하고 온화한 울타리 안에서 탄생한 천재적인 아이디어들이 차가운 자본주의의 폭풍우 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글로벌 유니콘으로 만개하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배 교수는 척박한 현장에서 기술(Tech)과 자본(Capital), 그리고 인력(Human)이라는 세 가지 핵심 축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지를 거듭 강조했다.
“혁신은 결코 차가운 기술력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꿀 압도적인 기술과 이를 꿰뚫어 보는 현명한 자본,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절박한 인재가 뜨겁게 융합될 때 비로소 진정한 딥테크 생태계의 숲이 우거집니다.”
특히 그는 상아탑의 젊은 연구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완벽주의의 함정’을 날카롭게 경계했다. 무결점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실 안에 고립되기보다는, 다소 투박하고 거칠더라도 시장의 생생한 결핍을 읽어내고 세상과 소통하는 유연성이 절실하다는 뼈 있는 조언이었다.
“실험실 안에서의 완벽함에 갇히지 마십시오. 눈부신 기술이라도 거친 시장과 치열하게 호흡하고 뒹굴 때, 천재들의 차가운 이성은 비로소 사람을 향한 따뜻한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상아탑의 차가운 이성에 세상을 향한 따뜻한 설득력을 덧입히는 이 고단하고도 위대한 작업. 그것이 바로 배현민이라는 지휘자가 KAIST 창업원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통해 연주하고자 하는 가장 웅장하고 인간적인 교향곡이다.
태평양을 건너는 혁신의 돛, 경계 없는 글로벌 멘토링
대덕 연구단지의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며 탄생한 혁신의 불씨들은 이제 한반도의 좁은 경계를 넘어 끝없는 대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배 교수가 창업원장으로서 단단하게 쥐고 있는 다음 목적지는 명확했다. 미주 지역을 포함한 더 넓은 세계 무대로의 과감하고 거침없는 확장이다. 그는 우수한 후배 창업가들이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글로벌 격전지에서 외로운 이방인으로 홀로 분투하지 않도록, 전 세계에 흩어진 한인 성공 사례들을 하나로 촘촘히 엮어내는 ‘글로벌 멘토링 네트워크’를 기획하고 있다. 처음 미국 땅을 밟고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던 유학 시절, 그가 가장 짙게 갈망했던 것은 정답을 쥐여주는 완벽한 지침서가 아니라 험난한 길을 곁에서 함께 걸어줄 단 한 명의 선배였다. 그 뼈저린 결핍의 기억은 이제 척박한 땅을 딛고 서려는 후학들을 위한 튼튼한 다리로 재탄생하고 있다.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숱한 시련을 넘어 확고한 자리를 잡은 한인 기업가들과 선배 연구자들이, 이제 막 거친 바다로 뛰어든 후배들의 든든한 등대가 되어주는 따뜻한 연대의 밑그림이다. 이는 단순한 비즈니스 정보 교류를 넘어, 타국에서 필연적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짙은 고독과 실패의 두려움까지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는 가장 인간적인 혁신의 방파제가 될 것이다.
화려한 이력서보다 묵직한 ‘절박함’의 무게새로운 팀원을 꾸릴 때 그가 가장 예리하게 살피는 것은 잘 포장된 이력서의 화려한 텍스트가 아니었다. 종이 위의 스펙 너머, 그 사람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이글거리는 날 것 그대로의 절박함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걸고 이 일을 기어코 해내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를 가슴에 품은 사람만이, 거친 창업의 풍랑 속에서도 끝까지 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단단한 지론이다. 완벽한 지도가 주어지길 기다리며 고뇌에 빠진 청년들을 향해 그는 묵직한 당부를 건넸다.
“머릿속의 흠 없는 궤적을 좇아 주저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디딜 수 있는 합리적인 한 걸음을 떼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작은 한 걸음이 만들어낸 미세한 균열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눈부신 시발점이 됨을, 척박한 개척의 길 위에서 스스로 증명해 낸 자의 따뜻하고도 강인한 외침이었다.
경계를 허무는 글로벌 한인 인재들의 융합
미국 무대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의 짙은 고뇌가 화두에 오르자, 하버드와 스탠포드라는 치열한 관문을 거쳐 메타(Meta)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치열하게 밤을 지새웠던 필자의 딸(박원희)이 걸어온 궤적이 겹쳐져 깊은 공감이 일었다. 화려한 이름 뒤에서 홀로 삭여야 했을 이방인의 눈물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어미이자, 시카고 한국일보 특파원인 필자의 시선에서 배 교수의 비전은 단순한 시스템 구축을 넘어선 절실한 위로로 다가왔다. 미주 한인 사회 곳곳에는 이처럼 빼어난 인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독하게 빛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딥테크 생태계가 좁은 내수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인재들과 유기적으로 맞닿아 발효될 때, 국경과 세대를 뛰어넘는 거대한 시너지가 열릴 것임을 우리는 함께 확신할 수 있었다.
거울 속의 뇌를 마주할 내일
긴 대화의 끝자락, 거침없는 그의 손끝에서 탄생할 다음 혁신의 닿을 곳이 궁금해졌다. 반도체 칩의 차가운 궤도를 지나 ‘오비이랩’과 ‘배럴아이’를 통해 생명의 가장 뜨거운 최전선으로 걸어 들어간 그는, 먼 미래의 거창한 유토피아 대신 지극히 다정한 일상의 풍경 하나를 조용히 꺼내 놓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의 뇌 상태와 혈관 건강을 직관적이고 편안하게 확인할 수 있는 세상. 무서운 병원의 거대한 기계 속에 누워 두려움에 떠는 대신, 혁신적인 기술이 가정의 따뜻한 일상 속으로 고요히 스며들어 사랑하는 이들의 깊은 아픔을 조기에 막아내는 눈부신 내일이었다.
모든 인터뷰를 마치고 연구실을 나서는 길, 카이스트 창업원 너머의 배현민이라는 치열한 개척자가 남긴 단단한 문장들이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는 차가운 금속과 부도체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고, 벼랑 끝의 짙은 위기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첨단 기술로 세상을 치유하는 도구로 숙성시켜 낸 진정한 장인이었다. 훗날 세상이 그의 궤적을 돌아볼 때, 그저 창업의 신화를 쓴 공학자를 넘어 사람을 향한 따뜻한 혁신을 피워낸 고결한 이름으로 기억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흔들림 없이 빛나는 굳건한 등대처럼 딥테크의 험난한 최전선을 묵묵히 밝히고 걷는 배 교수와 그를 나침반 삼아 거친 바다로 나아갈 수많은 청년들의 앞길에 늘 맑고 선한 기적이 쏟아지기를 진심으로 축복한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시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