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풀이] 長毋相忘(장무상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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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문인회 방 두 표

‘오랫동안 잊지 말기를!’ 이란 뜻으로 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네 글자로 ‘우리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맙시다.’라며 감탄사로 쓴 글입니다. 여기서 ‘毋’(무)는 ‘말라, 없다’의 뜻으로 ‘無’(무)와 뜻이 거의 같지만, 금지사(禁止辭)로 고전(古典)에 쓰이던 글자입니다. 그러면 ‘장무상망’이란 말이 생겨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헌종(憲宗)왕 6년(1840년 55세 때) 윤상도(尹尙度)의 옥사(獄事)에 관련되어, 제주도에 유배(流配) 9년 만에 풀려났는데,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그곳 생활은 비교적 자유스러웠으며, 조선은 물론이고 중국에 까지 이름이 난분이라 글과 글씨를 배우려고 찾아오는 제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멀리 고향을 떠나온 귀양살이가 외롭기 그지없었고, 새로운 학문과 접 할 길이 없을 때 한양에 있는 제자 ‘이상적’(李尙迪)18 ?- 1865)이 중국에서 어렵게 구해온 귀한 책을 공들이고 힘겹게 사람을 시켜 제주도에 있는 스승에게 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중국의 사신으로 10여 차례나 다녀왔고 그곳 명사들과도 친분이 두터워 서화(書畵),고완(古玩), 금석문자(金石文字), 서적(書籍) 등을 무려 120여권이나 되는 많은 양의 책을 구해 보냈다는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모두 필사본(筆寫本)으로, 한권의 책값이 집 한 채 값이 되는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새로운 지식이 담겨있고, 외롭게 귀양살이 하는 스승을 생각하고 자신의 부귀영화를 내 팽개치고, 스승에게 드렸던 것입니다. 이에 ‘추사’는 제자의 마음씀씀이가 너무나 고마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귀양살이에서 별로 할 것이 없자 고마운 마음을 한 폭의 그림엽서인 ‘세한도’(歲寒圖)라는 수묵화(水墨畵)를 제자에게 보냅니다. 이 그림에는 소나무와 잣나무(松柏)가 2그루씩 짝을 지어 4그루가 그려있는데, 2그루의 늙은 나무는 자신과 같은 노년을, 젊은 나무 2그루는 제자처럼 희망이 있는 세대를 의미 하며, 이 그림의 제목을 ‘세한도’로 한 것은, 공자(孔子)가 논어 제9편 자한(子罕)편에서,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세한연후 에 지송백지조야 이니라.) ‘한 겨울에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알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즉 평상시에 애국자다, 충신이다, 나라를 위해 헌신 한다. 라고 떠벌리기는 쉽다. 그러나 정말로 국가가 위험 할 때 내가 희생적으로 나서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승인 그는 제자에게 짧지만 깊은 뜻이 함축된 그림엽서를 보낸 것입니다. 그림왼편에는 공자의 글을 오른쪽 상단에 화제(畵題)로 ‘세한도’라 쓰고 밑에다 ‘우선(藕船), 여기를 보게 추운 그림일세. 완당(阮堂).’이렇게 쓰여 있는데 ‘藕船’은 제자의 호(號)이고, ‘阮堂’은 김정희의 다른 호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이런 감동의 편지를 받아보고 너무나 감격스럽고 애잔한 마음에, 2천 년 전 중국 한 대(漢代)의 막새기와에 찍혀있는 명문(名文)인 ‘장무상망’이라는 ‘인문’(印文)을 찍어 넣으며 큰절을 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잊지 말기를!’ 제자는 ‘한 폭의 그림을 엎드려 읽으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명한 사람의 단지 한 폭의 그림으로서 세한도는 국보 제180호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