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22] 우리가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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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창 1:27). 여기서 ‘형상’이라 함은 물론 눈에 보이는 외향적 모양이 아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창조성, 이성, 도덕성, 종교성 등등을 종합한 신기한 하나님의 DNA 같은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 닮은 인간을 만들어 놓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처음 건넨 말은 무엇이었을까?

성경을 자세히 읽지 않아본 사람들이 짐작하여 떠올릴 만한 ‘계율’들이 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 “~ 하지 말라” 등과 같은 금지의 계율들…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귀에 들려준 첫 말씀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어떻게 보면 전혀 종교적이지 않아 뜻밖이다.

흔히 신이 인간에게 내린 ‘계율’이 담고 있는 부정과 금지와 억제의 내용이 없다. 생육하라고 했다. 잘 살면서 자식 많이 낳아 다복하라는 명령이다. 번성하라고 했다. 더 늘어나고 많아져서 북적북적하게 되라는 명령이다. 어느 정도까지? 땅에 충만하라. 넉넉함이다. 안쓰럽게 빈약하지 않고 가득 차 있어 흡족하다. 시간과 공간을 꽉 채워 아쉬운 것 없게 하라는 명령이다. 땅을 정복하라. 때려 부수고 복종시킨다는 의미의 ‘정복’이 아니다. 끌려 다니며 억압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살라는 참 자유의 명령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다스리라. 리더십을 가지라는 말이다. 세상 모든 피조 세계를 책임져 관리하면서 리더십을 구사하는 자유 존재가 되라는 계명이다.

이것이 기독교 하나님의 뜻, 그분이 인간을 향해 갖고 계신 선한 의도다. 정말인가? 정말이다. 고행과 금지, 억압과 억제, 구속과 강요의 그 어떤 부정적 함의도 없다.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영적인 유전자를 심어 만든 인간에게 멋지고 신나게 잘 살아 흡족하게 풍요로운 자유인이 되라고 명령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이다.

이렇게 ‘첫 말’을 건네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것이 ‘복’이다. 그러니까 명령을 하면서 복부터 주셨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래서 이 첫 속삭임, 최초의 계명은 근본적으로 ‘행복 명령’이다. 성경의 종교는 ‘복’의 종교다. 그 어떤 명령을 실행하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복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을 ‘세속적 복’만으로 대체하는 ‘기복주의’는 잘못된 신앙이지만 인간 존재의 시작이 하나님의 ‘복 주심’이라는 것은 엄연한 성경의 진리다.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의도하신 사람이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행복한 인간’의 창조였다. 인간은 ‘행복’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고 그것이 인생의 시작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한 지금도 이 점은 변함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준 첫 계명은 ‘행복하게 잘 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인생은 행복해야 된다. 행복하지 않으면 나 자신만 아니라 나의 행복을 기획하신 하나님도 속상하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행복은 권리이기 이전에 의무다. 삶이 사명이다. 행복한 삶이 소명이다. 잘 사는 것이 삶 자체의 가치이며 하나님께 영광이다. 그래서, 조금 늦었지만… 독자 여러분, 새 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