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감사에 아멘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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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선 목사

우리는 자주 ‘사람들이 갈수록 악해진다’는 말을 한다. 특히 심한 삶의 스트레스 때문에 인성(人性)이 무너지는 곳이 어디 한두 곳이겠는가? 11월 감사의 달을 맞아 옛 어른들이 하시던 ‘배은망덕(背恩忘德)’이란 말씀이 새삼 떠오르면서 현대인들은 감사에 대한 심한 불감증에 걸려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은 감사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심각하게 비판한 “네 감사에 어찌 아멘하리요”(고전 14:16-17) 라고 한 말씀처럼 우리는 순수한 양심으로 맹목적 감사에 동의할 수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지 않을까?

감사의 의미는 ‘은혜를 받은 자들이 은혜를 주신 분에게 보답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감사는 우리에게 천지만물을 창조해주신 하나님께 대한 마땅한 본분(本分)이요, 조상님들께 대한 예절(禮節)이요, 공동체에 대한 책무(責務)이며, 그리고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대한 공경(恭敬)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에서는 참된 감사가 점점 살아져 그 모습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오히려 배은망덕을 지나 배신과 저주로 바뀌었고, 조상에 대한 감사는 그 뿌리를 부정하는 원망으로 변하였으며, 국가나 사회에 대한 감사는 빗나가 감사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 대상을 바꾸어 특정인을 찬양하는 앵무새의 감사에 맴돌고 있으며, 부모님께 대한 감사를 존속살해의 피로 물들이는 폐륜까지 저지르는 말세에 이르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진심으로 감사에 아멘 할 수 있는 공감은 어떤 감사일까? 하박국선지의 감사는 풍작(豊作)이 아닌 흉작 속에서도 감사했으며,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고 했고, 청교도들은 1620년에 101명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으나 혹독한 질병과 고난으로 50명의 동료들을 앞서 보내면서도 다음해에 추수를 주신 하나님께 역경 속에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던 믿음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다.

끝으로 감사는 은혜와 축복의 통로요 지름길이다. 감사 없이 축복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요 죄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감사의 대상을 바로 찾고 모든 삶속에서 진심으로 울어나는 감사를 드릴 때, 일찍이 잠언의 기자가 말씀했던 복, 물질의 풍요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물질을 초월하는 참 기쁨과 자족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mymilal@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