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의 궁극적인 희망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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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프랑스의 대표화가 밀레(Millet, Jean Francois 1817-1875)의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 ‘만종’이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1859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친 농부부부가 저녁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기도하는 평화롭고 전원적인 풍경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고전적인 그림입니다. 그렇지만 이 그림은 농부 부부의 슬픔과 소망이 담겨있는 그림입니다. 농부부부가 바구니를 밭 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었습니다. 농부 부부는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나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것입니다.

밀레가 죽은 그들의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입니다. 육체는 썩지만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 나타나신 것처럼 이 아기도 주께서 부활에 동참케 해주실 것을 믿으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진 것은 이 그림을 보게 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고,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인류의 조상 아담의 죄 때문에 모든 인간은 죽음의 운명이 되었는데,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영원히 사는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세상 사람들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하시며 죽음이 끝이 아니고 죽은 후 무서운 심판이 있고 그 심판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들이 추종하는 교주의 무덤이 있습니다. 불교의 석가모니, 이슬람교의 마호멧, 유교의 공자등 그 무덤 속에는 그들의 유골이 묻혀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무덤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무덤이 있었지만 빈 무덤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말씀대로 장사한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이 사실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도 부활의 약속이 된 것입니다.

–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4).

실로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을 것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7-1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죄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성경은 –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이 땅의 사람들은 최고의 소망을 구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최상의 소망을 제공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