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빚으로 돈을 빚는 은행

1967

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 대표

근대적인 개념을 가진 “은행”은 17세기 영국에서 유래가 되었다.  안전을 위해서 사람들이 금을 금세공업자들에게 맡긴 것에서부터 근대적인 은행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7세기 영국에서는 특별히 화폐라는 것이 없었다. 금이 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금은 무거웠기때문에 사람들이 항상 가지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 대신에 금을 녹여 만든 금화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금화도 역시 무겁고 불편하여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금이나 금화를 금세공업자들에게 맡기기 시작한다. 금을 세공하던 업자들에게는 크고 튼튼한 금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금세공업자들은 사람들에게 금이나 금화를 맡는 대신에 보관증을 써주었다. 이 보관증은 이것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훗날 언제든지 금을 돌려준다는 약속증서였다. 이러다보니 사람들은 금이나 금화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대신에 금보관증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것을 돈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금세공업자들은 처음에는 사람들의 금을 보관해주고 그들에게 보관수수료만을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금세공업자들은 사람들이 맡긴 금이나 금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아 챙기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금을 보관해 준다고 하면서 보관수수료를 받고, 그렇게 해서 자신들이 보관하게 된 금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고는 이자까지 받게 된 것이다.

 

이런식으로 이익을 늘려가던 금세공업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두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선 자신들에게 금을 맡긴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금을 전부 다 찾으러 오는 일은 결코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금세공업자들이 깨달은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자신들의 금고에 금이 얼마나 보관이 되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탐욕스러운 금세공업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금보다 열배나 많은 금액의 보관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빌려주면서 유통을 시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지급준비율이라는 개념의 시작이다.

 

오늘날 은행들은 대출을 통해 “통화”를 창조한다. 그래서 은행에서 창조하는 통화는 “빚”의 또다른 말이다. 고객들이 맡긴 예금중에 은행이 대출해 주지 않고 보관하는 돈을 “지급준비금”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고객이 맡긴 돈 전체에서 이 지급준비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지급준비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급준비율이 10퍼센트라는 말은 은행이 고객들로부터 받은 예금중에 십분의 일만 은행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대출을 해준다는 말이다. 예를들어 지급준비율이 10퍼센트 일 때를 가정해 보자. 이 때, 은행이 최초에 100만불의 예금을 받았다면, 은행은 그 십분의 일인 10만불만 은행에 남겨두고 나머지 90만불을 대출해 줄 수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 90만불을 빌려 간 사람이 그 돈으로 물건을 사든지 누군가에게 지급을 하고, 그 돈을 받은 누군가는 또다시 그 돈을 은행에 예금을 하게 된다. 그러면 은행은 다시 90만불을 받아 그 십분의 일인 9만불을 은행에 남겨 두고, 나머지 81만불을 또다른 누군가에게 대출해 주는 것이다. 처음엔 백만불로 시작했지만, 이런식으로 대출을 계속해주면 추가로 돈이 시중에 계속 풀리게 됨으로써, 결국에 시중에는 그 열배인 천만불의 돈이 유통될 수 있게 된다. 지급준비율이 낮을수록 은행은 돈을 조금만 보관하고 있어도 되므로 대출해 줄 수 있는 돈은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시중에 통화량은 증가하는 것이다. 반면에 지급준비율이 높으면 은행은 더 많은 돈을 남겨두어야 하고, 시중의 통화량은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유식한 말로 은행이 신용을 창조한다고 말을 한다. 빚을 줌으로써 새로운 돈을 창조해 낸 것이다.

 

이렇게 금세공업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금을 담보로 보관증을 남발했고, 이를 통해서 이자를 받아 챙겨 계속해서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이를 알게된 몇몇 예금주들은 금세공업자들을 괘씸하게 생각하게 되고, 결국 자신들이 맡긴 금을 한꺼번에 전부 찾아가게 된다. 이를 뱅크런(Bank run)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가끔 경제가 불안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예금을 한꺼번에 전부 찾으려고 은행으로 달려간다. 뱅크런은 처음에 금세공업자들에게는 커다란 위기였다. 하지만 곧 영국왕실이 나서서 금세공업자들이 남발한 보관증에 대해 지급보증을 서준다. 이러면서 정부가 보증하는 근대적인 은행이 세상에 처음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