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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May 2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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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펼쳐진 한국미술 2000년… “K-ART의 뿌리와 정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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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명 중인 지연수 큐레이터 사진 김이현 기자

지연수 큐레이터 인터뷰

미국 시카고에서 한국 미술 2,000년의 흐름을 조망하는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어 WINTV는 시카고 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의 지연수 큐레이터를 직접 만나보았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기증품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이 워싱턴 D.C.에 이어 시카고에서 두 번째 여정을 이어가며 현지 미술계와 관람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국보: 한국미술 2000년(Korean National Treasures: 2,000 Years of Art)》이라는 제목으로 3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 시카고박물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공동 추진하고,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과 시카고박물관이 함께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전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3점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7건, 보물 15건을 포함해 총 140건 257점이 출품됐다. 삼국시대 불상부터 조선 백자, 김홍도의 회화, 그리고 이중섭·김환기·박수근·이응노 등 한국 근현대미술 대표 작가들의 작품까지 한국미술의 정수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지연수 큐레이터는 “이건희 컬렉션은 단순한 개인 수집품이 아니라 한국미술의 정수이자 한국 문화유산 보존의 상징”이라며 “한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세계에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21년 삼성가가 약 2만3,000점에 달하는 방대한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기증 문화’의 의미도 함께 조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시카고 전시는 미국 내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시카고박물관은 미국 3대 미술관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2009년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모던 윙’ 증축 이후 처음으로 아시아 미술 특별전이 열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첫 전시가 바로 한국미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지 큐레이터는 “한국미술 특별전이 모던 윙에서 열리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과거에는 한국미술 하면 전통 도자기 정도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현대미술까지 함께 소개하며 한국미술의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시 초입에는 조선시대 달항아리와 함께 김환기의 대표작 ‘산울림’이 나란히 배치돼 있다. 그는 “서양 관람객들은 한국미술이라고 하면 전통미술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환기 화백은 조선 백자 달항아리의 한국적 미감을 깊이 찬미했던 작가”라며 “달항아리와 김환기의 작품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한국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 반응도 뜨겁다. 이미 개막 두 달 만에 수많은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고, 현지 언론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시카고 트리뷴은 이번 전시를 두고 “일생에 한 번은 꼭 봐야 할 전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 큐레이터는 “팬데믹 직전인 2020년에 부임했는데 당시 시카고박물관에는 한국미술 전담 큐레이터가 없었다”며 “한국실 역시 도자 중심 전시가 대부분이어서 회화, 조각, 목기 등 다양한 장르를 함께 소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이어 “시카고박물관에는 약 40명의 큐레이터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기관이라 특별전 공간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며 “다행히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과 많은 후원이 더해져 이번 대형 전시가 가능했다. 한류의 영향도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중섭 ‘황소’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정서를 담은 작품들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대표적으로 이중섭의 ‘황소’는 가장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지 큐레이터는 “이중섭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근대 화가 가운데 한 명”이라며 “붉은 색감과 울부짖는 황소의 모습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겪은 고통과 번뇌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여성과 결혼했지만 시대적 상황 속에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삶 역시 작품에 깊이 녹아 있다”며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전통미술 분야에서도 국보급 작품들이 대거 소개된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불상 5점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국보로 지정된 금동보살입상은 화려한 장신구와 우아한 의복 표현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노수현 ‘무릉도원’

조선시대 한글 불교서적인 ‘석보상절’ 역시 주요 전시품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수양대군에게 명해 간행한 책으로, 한글이 처음 활용된 귀중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다.

지 큐레이터는 “한지는 수백 년을 견디는 뛰어난 보존성을 가진 종이”라며 “훈민정음은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프트웨어’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조선 백자청화산수문병에 대해서는 “코발트 블루 안료 자체가 매우 귀했던 시절, 궁중 화원들이 직접 가마터에서 그림을 그렸을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제작된 최고급 백자”라고 소개했다.

이번 순회전은 지난해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시작됐다. 당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여파로 개막이 일주일 연기되는 변수 속에서도 약 8만 명이 관람하며 최근 5년간 특별전 가운데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웠다.

시카고 전시 이후에는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오는 10월부터 2027년 1월까지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규모와 수준의 전시”라며 “한국미술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인 만큼 시카고와 중서부 지역 한인들은 물론 현지인들도 꼭 관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미술 관련 영어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도록 발간 역시 연구자와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현재 한국 근현대미술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고 이건희 회장이 남긴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우리 시대의 의무”라는 철학은 이제 국경을 넘어 세계 미술의 중심 시카고에서 새로운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문화의 깊이와 미학, 그리고 한국미술의 세계적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역사적 무대가 되고 있다.

<전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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