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죽은 후의 뒤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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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우리의 삶속에서 가장 두려움의 대상은 바로 “ 더 이상 존재 하지 않음 “ 이 아닐까 한다. 물론 죽음이란게 아름다울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찾아 오는 죽음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죽은 사람이나 살아 있는 사람에게 후회 없이 깨끗한 뒷처리는 고인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 된다. 여기서 나타타는 것이 장례지도사도 있고, 유품정리사도 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내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였던, 로마 시대 작가인 P. 사이러스는 “ 죽음 자체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 했다. “ 죽음이라는 추상명사를 구체명사(具體 名詞)로 바꾸어서 바라보는 ‘ TDOD ‘ ( Talk about Death over Dinner ) 라는 운동이 있다. 이 그룹의 창시자는 마이클 헵 (MICHAEL HEBB)이라는 미국인이다. 이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 식탁에서 죽음을 이야기 하자 “ 이다. 회원이 되면 주변의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추모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현재는 미국을 비롯해서 몇몇 나라에서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미국만 보더라도 오래된 도시에 가 보면 시내 곳곳에서 묘지를 보기란 아주 쉬운 현상이다.
한국의 장례풍습 중에는 매장 문화라는게 깊게 자리 잡고 있으나, 요즈음은 서서히 달라져 가고 있다. 무의식적인 전통 고수나, 형식적이고, 과시형의 매장 문화는 변화되어야 한다. 마치 호화 분묘가 커다란 효도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사회나 자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 놓아야 한다. 한국의 묘지 숫자는 2천만기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중에 무연고 묘지가 40%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또 하나 비교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한국인의 1인당 주거 공간은 4.3평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죽은 사람들이 차지한 면적은 평균을 내어 보니 15평으로 나와 있다. 이게 합리성을 갖고 있는 장례 문화 풍습이라 말 할 수 있을까. 죽은 사람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산 사람의 3,5배가 된다는 것은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장례문화가 다른 각도로 다양해 지고 있다.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장례문화의 하나인 수장(水葬)이라는게 있다. 특별한 허가 없이 해안에서 3,45마일 이상, 수심 600피트 이상이면 된다. 이는 태평양 연안 주에서 실시하고 있다. 또한 화장과 수목장은 이미 자리매김을 해오고 있었던것이다. 특히 화장후의 뼈가루 처분은 각 주(State)마다 다르다. 한국에서는 점차적으로 수목장을 선호하는 가정이 늘어 나고 있지만, 이 또한 장 단점이 있다. 수목장의 원조는 독일이다. 독일인들은 숲에서 왔다가 숲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수목장이 생긴거다. 이젠 많은 문명 둑가들은 납골당을 선호하는 추세인것 같다.
바람직한 장례문화는 공존(共存)이란 테두리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할 듯 하다.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생각을 품으면 어떨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