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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May 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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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선 대표] 붓끝에 핀 영혼의 소리, 세계의 심장을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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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선작가(57세)가 '꽃'이라는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름의 싱그러움이 가득했던 2026년 5월 15일의 한낮, 대전 노은동 언덕배기에 자리한 ‘붓향’ 작업실로 향하는 길은 유난히 푸르렀다. 창가로 부드러운 햇살이 쏟아져 내리던 그 시간, 이화선 대표의 사무실은 묵향의 바다 그 자체였다.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그 내음은 단순한 먹물의 잔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이어진 붓질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한 예술가의 치열한 호흡과 영혼이 응축된 생명의 향기였다.

작업실 곳곳에는 닳고 닳은 붓대들이 꽂혀 있었고, 벽면에는 방금 숨을 내뱉은 듯한 글씨들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화선 작가는 ‘평화로운 물고기’라는 그의 호처럼 맑고 고요한 미소로 맞이했다. 그에게 캘리그라피는 단순히 문자를 예쁘게 꾸미는 기술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소리를 가시적인 형태의 춤으로 환치시키는 작업이자, 메마른 세상에 던지는 따뜻한 위로의 편지다. 본지 특파원과의 오랜 인연이 묻어나는 편안한 대화 속에서, 그는 붓끝에 담긴 자신의 인생철학을 하나둘씩 꺼내 놓기 시작했다.

광목 위를 휘도는 전율, 심장의 리듬을 붓으로 쓰다

“거대한 광목 앞에 서면, 세상의 모든 소음은 사라지고 오직 제 심장 소리만 들립니다.”

이화선 작가의 말처럼 그의 퍼포먼스는 하나의 예술적 행위를 넘어선 신성한 의식에 가깝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2026 남원시청 시무식’처럼 수천 명의 관객이 숨을 죽인 가운데 거대한 광목 위에 선 그의 몸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붓이었다. 첫 획이 그어지는 순간, 그것은 정지된 기호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되어 지면을 박차고 올랐다.

그의 심장 소리는 행사의 성격과 문구의 무게에 따라 다른 리듬을 탄다. 때로는 전장을 향해 나아가는 대북 소리처럼 웅장하게 심장을 타격하고, 때로는 새벽이슬이 풀잎에 맺히듯 고요한 긴장감 속에 비전을 드러낸다. 붓이 지면에 닿는 속도, 망설임 없는 과감함, 온몸을 던지는 스텝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그는 ‘내가 붓이 되었고, 내가 곧 메시지가 되었다’는 영적 합일의 상태에 진입한다.

퍼포먼스가 끝난 뒤 100미터 달리기를 마친 직후보다 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눈이 형형하게 빛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온 에너지를 쏟아부어 대중과 영혼으로 소통했다는 희열, 그리고 그 전율이 현장의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전이되었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에게 붓질은 팔의 움직임이 아닌, 심장의 파동이 손끝을 통해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서사다.

실패의 두려움을 압도하는 사명, 확신의 뿌리를 내리다

캘리그라피 퍼포먼스는 단 한 번의 붓질로 모든 것이 결정되며, 수정도 퇴고도 허락되지 않는 정직한 예술이다. 18년의 세월을 보낸 대가에게도 두려움은 숙명과 같다. 돌발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지만 이화선은 말한다. “실패할 수 있는 인간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그가 두려움을 압도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자기 과시나 완벽주의가 아닌, 작업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과 ‘사명’에서 기인한다. 나라의 행사라면 민족의 혼을 깨우는 책임감이, 지역 축제라면 시민들에게 행복을 주어야 한다는 사명이 그를 지탱한다. 독실한 신앙 또한 붓을 든 손에 영적인 힘을 실어준다. “이것은 단순한 숙제가 아니라 저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전달할 가치에 집중할 때 공포는 사라지고 확신의 뿌리가 내린다. 그는 무대 위에서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도구로 쓰임 받는 것에 감사하며 그 진심이 획 하나하나에 깃들기를 기도한다.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서도 당당히 첫 획을 긋는 모습에서 우리는 예술가의 용기와 겸손을 발견하게 된다.

자연의 빛을 관찰하여 빚어낸 독보적 화풍

이화선의 작품을 보면 단순한 먹과 종이의 만남이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대중을 압도하는 수려한 그림 실력은 정식 미술 교육의 산물이 아니다. 그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스승 아래에서 스스로 길을 찾았다. 중학교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글씨 써서 밥 먹고 살겠다”는 예언 같은 칭찬을 들었던 소녀는 이제 자연의 색을 넘어 ‘빛’의 본질을 화폭에 담는 작가가 되었다.

“아침 햇살에 비친 나뭇잎의 색과 해 질 녘 노을에 물든 대지의 색은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찰나의 변화를 관찰하며 빛이 사물에 닿아 일으키는 파동을 보았습니다.”

형태를 따로 배우지 않았기에 그의 붓끝은 오히려 더 자유롭다. 자연의 입체를 평면에 옮기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점묘화’ 같은 세밀한 관찰이었다. 서예의 필치와 서양화의 색채감이 섞인 그의 화풍은 기성 화단에서도 독특하다. 한국화의 단아함과 서양화의 자유로움이 공존하여 전공자들조차 그 비결을 배우러 올 정도다.

이제 작품에서 글씨와 그림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그림이 메시지의 80%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기저에는 먹의 번짐과 여백의 미를 살린 한국적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소리와 빛, 마음의 움직임을 형상화하는 그의 붓끝은 자연에 대한 순종과 창조적 파격이 맞물려 있다.

대전 노은동에 자리한 이와선작가 (좌) ‘붓향’ 사무실에서 본지 특파원(우)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붓향’, 사람을 살리는 가장 향기로운 언어의 연금술

‘붓향(Boothyang)’이라는 이름에는 단순히 먹의 향기를 즐기는 차원을 넘어선 이화선만의 깊은 인생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글씨를 ‘사람의 말을 형체 있게 만든 것’이라고 정의한다. 말에 온도가 있고 감정이 있듯이, 글씨 또한 단순한 정보 전달의 도구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믿음이다.

“어떤 이는 제 글씨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럴 때면 제가 든 붓이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는 붓을 들 때마다 자신의 글씨가 사람을 살리는 향기가 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가 지향하는 ‘글씨의 향기’는 단순한 냄새에 머물지 않고 생명의 기운이 되어 절망의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을 던진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삶 전반으로 확장된다. 그는 글씨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굳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붓끝의 온기로 녹여낸다. 붓을 든 그의 손길이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K-캘리그라피의 세계화, 한글의 조형미로 세계를 매료시키다

경기대학교 한류문화대학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K-캘리그라피’의 학문적 기틀을 마련한 이화선은 한글의 세계화에 대해서도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서구의 타이포그래피나 이웃 나라의 서예와 차별화되는 한글 캘리그라피만의 독보적인 생명력으로 ‘조형미’와 ‘소리의 형상화’를 꼽는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이 결합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입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음의 선과 자음의 곡선이 만나 만드는 그 오묘한 균형감은 전 세계 어느 문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최상의 예술적 자산입니다.”

그는 한글이 단순한 소리 문자를 넘어 감정의 파동을 시각화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라고 강조한다. 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그 중심에 있는 한글에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제자들을 교수로 세우고 학과를 창설하며 한글 캘리그라피를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장르로 격상시켰다.

절망의 끝에서 건네는 ‘치유의 카피’

이화선의 예술은 화이트 큐브의 전시장 안에만 갇혀 있지 않다. 그의 붓끝은 가장 낮은 곳, 가장 아픈 곳을 향해 흐른다. 대한적십자사와 정신건강복지센터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그가 쏟아내는 문장들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누군가의 생명을 붙드는 가느다란 생명줄이 된다.

“자살 예방이나 정신 건강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힘내세요’라는 말을 건넵니다. 하지만 정말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말은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되거나 폭력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들이 방어 기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눈치채지 못할 위로의 말을 고민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문구가 바로 ‘마음은 맛있다’이다. ‘마음을 먹는다’는 우리말의 중의적 표현을 빌려, 무겁고 힘든 결심 대신 맛있는 음식을 먹듯 가볍고 즐겁게 마음을 돌보라는 작가만의 철학적 제안이다.

치유의 순간은 요란하게 오지 않는다. 조용히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글씨 앞에서 한참을 울다 나갈 때, 혹은 무심코 지나치던 길 위에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문장을 만났을 때 일어난다. 이화선은 그 찰나의 마주침을 위해 오늘도 묵상하며 단어를 고른다. 그의 캘리그라피가 ‘살리는 예술’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정직하게 응시하고 따뜻하게 보듬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정직한 글씨’, 시카고 동포들에게 건네는 ‘잇다’의 철학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기계적인 폰트가 넘쳐나는 2026년의 오늘, 이화선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냄새’를 이야기한다. AI는 완벽한 형태를 복제할 수는 있지만, 한 인간의 고유한 삶의 궤적과 그 안에 서린 눈물의 농도까지 흉내 낼 수는 없다. 그는 이것을 ‘정직한 글씨’라 부른다.

“AI가 따라오지 못할 영역은 바로 인간의 아주 주관적인 스토리입니다. 내가 홍시를 보며 엄마의 젖 냄새를 떠올리는 그 지극히 개인적인 감수성, 그 먹의 흔적과 속도, 질감은 기계가 데이터로 수집할 수 없는 영역이죠. 저는 제자들이 기교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정직해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예술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이러한 그의 철학은 한인 동포들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간다. 낯선 이국땅에서 모국어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글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동포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잇다’를 꼽았다.

“당신과 내가 이어져 있고, 당신과 다음 세대가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시카고라는 땅과 한국이 당신을 통해 이어져 있습니다. 이 연결의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그는 한글이라는 뿌리가 타향에서도 굳건히 내려져 있음을, 그리고 그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음을 붓끝으로 확인시켜 준다.

미래 세대를 향한 마지막 획

이화선의 비전은 화려한 높이가 아니라 깊이를 향해 있다.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더 본질적인 가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화선 체’라는 독창적인 서체를 개발했지만,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묶어두지 않는다. 제자들을 교수로 세우고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며, 한글 캘리그라피가 미래 세대의 든든한 문화 자본이 되기를 꿈꾼다.

“저는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밑으로 깊이 파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남들에게 주목받는 높은 자리는 금방 잊히지만, 깊게 파 내려간 뿌리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생명력을 갖게 마련이죠. 제 목표는 오직 하나, ‘살리는 글씨’를 쓰는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작업실을 나오는 길, 본지 특파원의 귓가에는 작가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살리는 예술’의 의미가 깊게 남았다. 그는 오늘도 붓을 놓고 긴 묵상에 잠긴다. 붓을 드는 시간보다 붓을 놓은 채 마음을 닦는 시간이 더 길다는 그의 말에서 진정성을 읽는다. 그가 그어 내려가는 마지막 획은 결국 종이 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그어지는 희망의 선이다.

시카고의 하늘 아래, 혹은 고국의 어느 골목길에서 그의 글씨를 만나는 모든 이들이 그 향기에 취해 다시금 생의 의지를 다지기를 소망해 본다. 이화선의 붓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이 피어날 때까지 영혼의 춤사위는 계속될 것이다.

이가희 시카고한국일보 한국특파원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시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