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활동가엔 테이저건 고문…이번엔 정말 죽을 수 있다고 생각”
“고립된 팔레스타인 외면 어려워…여권법 위반? 기본권 침해”
(서울=연합뉴스) 한지은 기자 = 가자지구행 국제 구호선단에 탑승했다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된 뒤 귀국한 활동가 김아현(활동명 해초)씨는 “이스라엘군이 총구를 겨누는 걸 보면서 ‘어쩌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 지역이다.
김씨는 귀국 당일인 22일 오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나포 후 배 위 컨테이너 감옥에서 여러 군인에게 폭행당해 왼쪽 귀 고막이 파열됐다”며 “이번 항해는 지금까지 경험한 항해 중 가장 폭력적이었다”고 증언했다.
김씨가 탑승했던 ‘리나 알 나불시’호는 가자지구에서 약 218.5㎞ 떨어진 지중해 공해상에서 이스라엘에 나포됐다.
그는 “‘내일이면 가자에 도착한다’는 기대감이 있던 상황에서 나포돼 아쉬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자신에 대해 “겁이 많은 사람”이라면서도 “가자지구는 여전히 고립돼 있고 많은 사람이 기아와 폭격으로 죽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가자를 위한 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위험한 행동’이자 ‘외교적 부담’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는 일반 시민들도 참여하는 국제 연대 운동”이라며 “고립된 지역과 연대하기 위한 행동을 특별하거나 유난한 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활동명 ‘해초’가 ‘민초'(민중을 잡초에 비유한 말)에서 따온 단어이고, 무교이며 초등학생 때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한 이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전했다.
다음은 김씨와 일문일답.
— 몸 상태는 어떤가.
▲ 이스라엘이 범죄자 취급을 하듯 추방 절차를 진행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계속 감시받았다. 태국 경유 과정에도 음식이나 물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쉴 수도 없었다. 핸드폰과 지갑을 모두 뺏긴 상태라 영사와도 연락하지 못했다.
— 공항에서 바로 병원으로 이동했다고 들었다. 어떤 진단을 받았나.
▲ 폭행 이후 왼쪽 귀가 먹먹하더니 지금은 잘 안 들린다. 왼쪽 귀 고막 파열이 의심된다. 함께 항해한 김동현 활동가는 포박된 상태에서 구타당해 횡문근 융해증 진단을 받았다. 근육 손상을 나타내는 크레아틴키나아제 수치가 정상 범위가 200 정도라고 치면 5천500까지 나왔다고 들었다. 장기 입원이 필요한 상태다.
— 이번 항해를 다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 지난해 항해 이후 활동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꼈다. 가자지구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고립돼 있다. 이번은 역대 가장 큰 규모였고 항해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참여를 결심했다.
— 탑승했던 배는 어떤 배였나.
▲ 32피트 규모 세일링 보트였다. 6명이 탑승했고, 배 안에서 먹고 잤다. 프랑스에서 출발해 이탈리아·그리스·튀르키예를 거쳐 가자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 위험성은 어느 정도 예상했나.
▲ 이전에 나포됐던 활동가들이 심하게 구타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실제로 이스라엘군이 총구를 겨누고 고무탄과 섬광탄, 테이저건까지 사용했다. ‘어쩌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 이스라엘군이 어떻게 배를 나포했나.
▲ 무전으로 음악을 틀어 다른 배들이 구조 요청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후 쾌속 고무보트를 타고 와 배를 파손했다. 위치 공유 장비 같은 핵심 장비부터 부쉈고, 완전 무장 상태로 진입해 총으로 위협하며 우리를 한 곳에 몰아넣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 왜 나포하는지 설명도 없었다. 해적을 만난 느낌이었다.
— 나포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 매우 아쉬웠다. 하루만 더 갔으면 가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포 당시 이미 가자까지 24시간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 나포 이후 군함 위 컨테이너 감옥에 수감됐다. 좁은 컨테이너에 활동가를 한 명씩 넣고 폭행하는 절차가 있었다. 불을 꺼놓은 상태에서 여러 군인이 얼굴을 심하게 때렸다. 그때가 가장 두려웠다. 감옥에 오래 있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여성 활동가는 성추행, 성고문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남성은 대부분 테이저건 고문을 당했다. 아랍계 사람들이 못 걸을 정도로 맞은 것을 직접 목격했다.
— 죽음을 불사한 각오는 어디서 나왔는가. 종교적 이유도 있나.
▲ 나는 무교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고 용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겁쟁이라 밤에 혼자 자는 것도 무서워한다. 겁쟁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유서를 쓰지 않아서 폭력 상황에 처했을 때 아쉽다고 생각했다.
—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 초등학생 때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한 경험이 컸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보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밀양이나 강정 같은 현장을 계속 방문하며 자연스럽게 활동하게 됐다.
— 해초라는 활동명은 어떻게 정했나.
▲ 민초라는 말이 있지 않나. 민중들이 풀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바다의 활동가이라 해초로 지었다.
— 왜 팔레스타인인가.
▲ 식민 지배와 전쟁 역사가 깊었던 국가에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 국내에서는 위험한 행동이고 외교 부담이라는 비판도 있다.
▲ 외교적으로 부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 연대 운동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활동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전 세계의 고통받고 고립된 지역과 연대하기 위한 행동이 특별하거나 유난한 일이 아니라 시민들이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식 가운데 하나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이번 항해에는 유럽 정치인과 프랑스 국회의원, 아일랜드 대통령의 여동생 등도 함께 탑승했다.
— 여권 사용 제한 조치가 계속돼도 활동을 이어갈 생각인가.
▲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갈 것이다. 사람은 이동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권법으로 이동을 막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고 본다. 여권법 폐지 요구 활동도 이어 나갈 것이다.
— 앞으로 계획은.
▲ 항해뿐 아니라 가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함께할 생각이다. 우선 올해는 복학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