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30] 남편에게 복종하라구요?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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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가정의 달이랍시고 여성들에게 여필종부(女必從夫)의 교훈을 던지면 지체없이 돌이 날아올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가르친다. 이곳 지면의 한계상 그 본문을 다 옮겨올 수 없으니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에베소서 5:22-33을 독자들이 각자 읽어볼 것을 권한다. 현대 문화의 시각으로 보면 꽤 불편하게 들릴 수 있는 표현들에 너무 노여워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먼저 아내에게 주는 말씀이 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5:22). 역사의 죄인인 ‘한남’들은 너무 좋아하지 말라. 조금 더 읽어봐야 할 것이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된다는 말씀인데… 그러나 잘 살펴서 읽어야 한다. 그 사랑의 정도가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 명령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하신 행위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5:25).

여기에 ‘주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파라디도미’(παραδίδωμι)는 ‘마음 대로 처분하도록 맡기다’ 또는 ‘목숨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어주다’의 뜻으로 쓰였다. 예수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위하여 죽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사실 노예가 주인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행위이다. 주인이 노예를 위해 죽는 일은 없다. 그러나 노예는 주인을 위해 죽기도 한다.

이런 예수의 모습을 초대교회 찬송을 인용하고 있는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읊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그러니까 남편들에게 요구되는 아내 사랑은 노예가 주인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처분대로 맡겨 목숨까지 내어주는 그런 사랑이다. 사실은 더 강력한 복종 이미지다. 노예는 주인에게 죽기까지 복종한다. 표현으로 보자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과 남편이 아내를 위해 목숨 바쳐 사랑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힘들고 어려울까? 어떤 것이 더 강한 복종의 행위일까? 확실히 남편의 복종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부부관계에 있어서의 본래 뜻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21). 우리 성경에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5:22)로 번역된 그리스 원문에는 동사가 없다. 그러면 동사를 어디서 가져와 번역 때 ‘복종’이란 말을 넣었을까? 바로 앞의 5:21이다. “피차 복종하라.” 그러니까 아내의 복종은 ‘상호 복종’이라는 큰 명제 안에서의 복종이다. 남편의 아내 사랑은 이 ‘상호 복종’의 명제 아래서 아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노예적 복종의 사랑이다.

이 ‘상호 복종’이 본래 그리스도인의 사랑 개념이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예)노릇 하라”(갈 5:13). 부부 사이는 권력투쟁의 관계가 아니라 권력 절대 포기의 ‘상호 섬김’의 사랑이다. 이것이 ‘복종’이라는 표현의 의미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복종하는 마음과 자세, 이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한다. 사랑은 서로에게 진심으로 노예 노릇하며 복종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