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브루고뉴로 돌아오다(Back to Burgund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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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진득하고 겸허한 자세로 프랑스 브르고뉴(버건디) 와이너리의 사계절을 화면에 담은 따뜻하고 싱그러운 영화를 소개한다. 7년동안 같은 지역을 답사해서, 사진찍고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며 세심하게 준비한 감독의 집념과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쟝’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10년만에 브루고뉴 고향에 돌아온다. 할아버지때부터 운영하는 포도원과 오래된 집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여동생 ‘줄리엣’은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포도원 주인 역할을 하고, 막내 ‘제레미’는 어느 새 장가를 가서 아기도 있다. 쟝에게 고향은 그립고도 씁쓸한 곳이다.

집과 포도원 구석구석마다 어린 시절 추억들로 가득하다. 자상했던 엄마와는 달리 무뚝뚝한 아버지는 유독 장남인 쟝에게 엄격했다. 줄리엣은 일찍부터 어깨너머로 터득한 와인에 대한 지식과 미각이 뛰어나서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 쟝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노력했지만 한번도 칭찬을 듣지 못했다. 쟝은 고향을 떠나 세계를 돌아다니다 칠레 포도원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는다. 그곳에서 만난 ‘알리시아’와 호주에 정착해서 작은 포도원을 운영하고 아들도 태어난다. 포도원 운영이 힘들어지고 알리시아와의 관계도 삐걱거리는 중에 줄리엣의 연락을 받았다.

 삼남매는 회포를 풀면서 밀린 얘기를 나눈다. 줄리엣은 젊은 여자가 포도원을 관리하면서 격는 어려움과 불안을 토로한다. 아버지때부터 함께 한 지배인 ‘마르셀’이 든든한 버팀목이지만

자신의 능력과 리더쉽에 자신이 없다. 줄리엣은 쟝이 함께 일하기를 소원한다. 제레미는 마을의 큰 와이너리를 소유한 부잣집 외동딸과 결혼해서 처가살이를 하는데, 자신을 무시하고 매사를 간섭하는 장인때문에 신혼이 고달프다. 어른이 되어 다시 모인 삼남매는 가족의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한다. 잠시만 머물 예정이었던 쟝은 동생들과 포도 재배와 수확, 그해 와인을 만들고 숙성시켜 시음하는 전과정을 거치며 일년을 보낸다. 그 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남매는 포도원과 집을 물려 받늗다. 거액의 상속세에다 호주 포도원이 자금난을 겪는 중이라 쟝은 포도원을 팔고 자기 몫을 챙기고 싶어한다. 동생들과 의견 차이로 감정적으로 폭발도 한다. 형제들은 낡은 집을 수리하고 포도원을 내놓는다. 줄리엣이 호주의 알리시아에게 전화를 하고 그녀가 아들을 데리고 고향집을 방문한다. 아들과 알리시아와 며칠을 보낸 쟝은 가족의 포도원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죽은 아버지가 남긴 편지에 항상 쟝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진심이 밝혀지고, 쟝은 형제들에게 포도원의 운영을 맡기고 호주로 돌아간다. 제레미도 권위적인 장인의 그늘에서 떠나 독립한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프랑스 와이너리 체험을 하는 것 같다. 와인을 즐기지 않아도 브르고뉴의 아름답고 때묻지 않은 사계절의 자연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와인 만들기가 얼마나 고되고 정직한, 땀과 노동, 기도의 결과인지, 그리고 하늘이 도와야만 가능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나면 한잔의 와인이 나에게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쏟은 치열한 수고에 감사하게 된다. 빼어난 풍광과 현장에서 섬세하게 촬영한 와인 제조 과정, 맛있는 와인 시음 광경들로 눈과 귀가 즐겁다.  가족과 가업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