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감사와 사랑이라는 수퍼 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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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던 베드로와 요한은 공회에 잡혀가 취조 당합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을 가르치지도 말고 전파하지도 말라”는 위협을 받고 풀려난 사도들은 곧바로 동류들에게 달려갔습니다.동지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일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에서 마음에 감동을 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일심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속한 이 공동체가 어떤 곳인지 이 단어 하나로 분명해집니다. 구성원 모두가 하나처럼 연합된 모임인 겁니다. ‘일심 공동체’가 이 시대 교회들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사도들이 속한 일심 공동체를 묵상하면서 어떤 영적 요소가 이들을 하나로 묶는 수퍼 글루 역할을 하고 있을까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두 개의 단어가 떠올랐습니다.감사와 사랑.

감사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해주신 예수님 은혜에 대한 당연한 영적 반응입니다. 감사는 헌신을 낳습니다. 바울은 감사에 기초한 헌신의 모범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죠.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데 열렬히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구원해주신 겁니다. 바울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했고 그 감사함을 동력 삼아 맡겨주신 소명에 헌신합니다. “하나님께 원수되었던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다른 사도들 보다 더 많이 수고했으나 그 수고의 원천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바울의 고백 안에 감사가 가득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충성하다보면 성도들간에 동지 의식이 생깁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서로를 묶어주는 겁니다. 이처럼 감사는 헌신과 동지애를 낳는 겁니다. 사도들이 중심이 된 일심 공동체가 그랬던 겁니다.

완전한 한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감사와 함께 사랑이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감사가 헌신과 동류 의식을 낳게 되면 다행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상호 경쟁의 분위기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던 큰 무리들 가운데서 12명을 택해 사도로 세우셨을 때 택함 받은 사도들은 감사했을 겁니다. 그 결과 12 제자는 평소 자신이 귀하게 여기던 소유를 다 내려놓고 주님을 따를 정도로 헌신하고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끝나갈 무렵 그들은 서로 다투기 시작합니다. 나라를 회복하셨을 때 주님의 오른쪽과 왼쪽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관심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더 충성했으니 그 자리는 내 것이야라며 서로 다툰 겁니다. 이 시대에도 적잖은 교회들이 이런류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해 주님께선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깊이 묵상할수록 새계명이 지닌 무게와 중요성을 더 깊이깨닫게 됩니다. 초대 교회는 주님의 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함으로 일심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겁니다.

앞으로 자신이 섬기는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이 두 단어가 실천되는 공동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나’ 자신부터 감사와 사랑을 잊지 않고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구요.

시카고의 모든 교회들이 일심 공동체로 세워지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