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땅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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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바울과 함께 승선했던 275명은 무사히 한 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섬의 이름은 몰타였습니다.

만약 바울이 탄 배가 미항을 떠나 원래 목표했던 뵈닉스라는 항구에 도착해, 그곳에서 겨울을 지내고 곧바로 로마를 향해 항해했다면, 바울이 탄 배는 몰타를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몰타는 바울을 통해 복음 들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광풍을 통해 바울을 그 섬에 보내주신 겁니다.

물론 광풍 때문에 뵈닉스가 복음을 듣지 못했다고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뵈닉스가 속한 그레데 섬은 이미 복음을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절기를 맞아 로마 전역에서 예루살렘을 찾은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그레데인도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그레데는 큰 섬으로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그곳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제법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 오순절은 아주 특별했습니다. 이때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날 성령에 감동된 베드로가 일어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복음을 전했고, 그 자리에서 3천명이 예수님을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중에 분명히 그레데인들도 있었고, 이들이 돌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겁니다.

하지만 몰타는 사정이 다릅니다. 이 섬은 그 크기가 90 평방 마일 정도로 그레데 섬의 34분의 1 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섬이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입니다. 게다가 그곳에는 주로 원주민들이 모여 살아서, 외부에 잘 알려진 섬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0”인 겁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광풍을 일으킨 건 아니지만, 이 광풍을 통해 바울을 섬에 보내신 겁니다. 또한 섬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 밭도 준비해 주셨습니다. 독사에 물린 바울을 멀쩡하게 하셔서 그를 원주민들 앞에서 높여 주셨고, 치유의 사역을 통해 바울이 증거하는 하나님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복음을 전했다고 직접적으로 기록하고 있진 않지만, 사도 행전이 보여준 지금까지의 삶을 기초할 때,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바울이 결코 아닌 겁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기회의 땅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을 겁니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건너 가다라라는 이방인들의 땅에 가셨습니다. 복음의 사각 지대, 땅끝에서 살고 있는 한 불쌍한 영혼을 찾아가신 겁니다. 그 불쌍한 영혼은 인종의 벽과 소외의 벽, 그리고 마귀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개처럼 취급하는 이방인이었고, 또한 군대 귀신에게 점령당해서 영혼과 육신이 다 망가진 상태였고, 그것 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나 공동 묘지에서 홀로 살아야 했습니다. 땅끝 중에서도 땅끝에 살고 있는 불쌍한 영혼이었습니다. 주님께선 그 땅끝을 찾아가 전혀 소망이 없는 영혼에게서 군대 귀신을 쫓아 주셨고, 회복된 그에게 소명도 주셨습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가서 자신이 체험한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을 주신 겁니다. 그는 가족과 친지뿐 아니라, 데가볼리 지역 전체를 다니며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몰타 섬의 사람들과 군대 귀신 걸렸던 이방인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벽의 성격이 다를 뿐, 벽에 갇혀 땅끝에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보내신 누군가가 전해준 복음을 통해 그 벽에서 해방된 겁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런 저런 벽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찾아가 내가 체험한 예수님 이야기, 즉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복음이 필요한 자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간다.”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