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덤에서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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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을 예수님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묵상합니다.

먼저 주님은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분노하신 겁니다. 주님을 둘러 싸고 있는 사람들만 보아서는 이 감정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상황도 가슴 아픈 일이지 분노할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은 어떤 대상을 향해 분노하고 계신 걸까요? 바로 사단의 세력입니다. 인간을 범죄하게 만들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고, 그후 죄와 사망을 무기 삼아 인간을 마음대로 주물러온 사탄의 세력에 분노하고 계신 겁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공중 권세를 틀어쥔 사단의 세력이 온갖 시험과 유혹을 동원해서 사람들을 미혹해온 결과가 로마서 3장 말씀에 아주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큰 내용만 정리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찾는 사람들이 없고, 죄에 무감각 해져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원래 하나님의 형상 대로 창조된 인간들이 이처럼 철저히 망가진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그 원흉인 사단의 세력을 향해 진노하고 계신 겁니다.

또한 주님은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마음이 아플 정도로 딱하고 안타깝게 여기신 겁니다. 사탄의 미혹에 빠져 죄와 사망이라는 절망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셨던 겁니다. 무덤에 묻혀 나흘이 지난 나사로의 시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다 잃어버리고 절망 중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을 대변하고 있는 겁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고작 떠난 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서로 위로하는 것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니 너무 민망하신 겁니다. 그리고 죽은 자가 묻힌 무덤을 바라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절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시는 겁니다. 또한 마르다의 흔들리는 모습도 주님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마르다는 주님께 부활의 믿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향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또한 메시아이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는 주님 말씀에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난다고 말하며 주저하는 마르다를 보고 안타까우신 겁니다. 너무 오랫동안 사단에 속아 살아와서, 부활과 생명의 주님께서 함께 하고 계신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망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절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는 동안,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주님은 눈물까지 쏟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겁니다.

마지막 감정은 감사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선 아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항상 내 말을 들어주신 아버지, 지금도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이곳에 모인 자들로 믿게 해주세요.”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 이제는 전혀 소망이 없는 나사로를 아들을 통해 살리셔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 지, 하나님께서 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는지를 깨닫고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주님께서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크게 외치셨습니다. 주님은 나사로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에 짓눌려 이미 죽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아, 내 음성을 듣고 나에게 와서 나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외치신 겁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복됩니다. 이젠 일몰(sunset)을 향해 어깨를 늘어뜨리고 가는 삶이 아니라, 일출(sunrise)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삶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랑에 뿌리를 둔 이 감정들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통분함과 민망함으로 다가가 감사함으로, “나는 “무덤에서 나오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당신도 나처럼 되길 바랍니다.”라고 담대히 외치는 증인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