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바나바처럼

1849

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사도행전 4장과 5장에서 바나바와 아나니아 부부는 교회내 어려운 자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내어놓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쓰임받고 아나니아 부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고 맙니다. 이유가 뭘까요?

먼저 부활 신앙의 유무가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부활 신앙이란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믿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마지막 때에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는 겁니다. 부활 신앙인들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겁니다. 현재 내게 있는 물질 모두가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물질을 하나님 뜻 대로 관리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바나바는 이 부활 신앙에 기초해서 자신의 밭을 팔아 그 전부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드린 겁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바나바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도 청지기의 삶을 살도록 적극 도왔습니다. 2차 선교 여행을 떠나기전 바울과 대판 싸운 이유도 바나바의 이런 가치관 때문이었습니다. 마가가 회개했으니 그가 선교지에서 자신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자고 주장한 겁니다. 바울이 끝내 거부하자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따로 선교를 떠납니다. 하나님께선 이런 바나바를 당신의 도구로 삼아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달랐습니다. 어느 순간 부활 신앙을 놓쳐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자 욕심에 지배 당하고 맙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 바나바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고 싶은 욕심. 교회의 약점을 노리는 사탄이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리가 없습니다. “밭을 팔아 일부는 감추어두고 나머지만 갖다 줘. 숨긴 걸 누가 알겠어. 돈도 얻고 칭찬도 받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어.” 결국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고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다음으로 삶의 주인이 누구냐가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바나바는 성령 충만을 체험한 후 그분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주인이신 성령님께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보여주시고 도우라 말씀하시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바울과 함께 자신을 선교사로 부르셨을 때도 순종합니다. 선교사로 부르셨을 때,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헌신해서 안디옥 교회를 부흥케 한 직후였습니다. 그냥 안디옥 교회에 남아있으면 편하게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주신 새로운 소명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바나바는 성경에 훌륭한 사도로 기록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 당시가 전무후무한 부흥의 시기라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성령님의 권능을 체험했을 겁니다. 하지만 욕심이 성령의 불을 소멸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들 영혼의 빈 자리를 사단이 얼른 차지해버리고 만 겁니다. 로마서 8장 말씀은 성령님을 좇는 자는 육신을 좇지 않고, 육신을 좇는 자는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없음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육신을 좇는 편을 택했고 그 결과 사단이 죄 보따리를 안고 들어와 그들의 영혼을 차지해버리고 만 겁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이었습니다.

부활 신앙에 기초한 청지기적 삶과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신 절대 순종의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필수의 영적 요소들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