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십자가 앞에 있던 사람들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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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담임

 

십자가 앞에 있던 세 번째 사람들은 십자가 앞에 ‘서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 27:35-36) 지금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비난하며 서 있던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이었습니다. 이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나 십자가 앞에서 심령이 변화되지 못한 자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성경의 지식은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성소에서 진행되는 모든 의식과 예식에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특별히 구약에 기록된 메시야에 관한 모든 예언을 꿰고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도 헤롯이 물었을 때 대답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그저 잘 아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그분이 메시야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마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예수님께로 쏠려갈 때 그들의 마음은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보기에 너무나 초라했던 나사렛 출신의 젊은이를 메시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의 영적 교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십자가 앞에 서 있던 사람들, 혹 우리들도 그들과 같지 않습니까? 십자가 앞에 서 있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지식으로만 알 뿐 마음으로 감동하고 변화되지 못했다면 우리들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교만의 마음들, 못난 자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변화되지 못할 때 우리의 몸은 오늘도 십자가 앞에 서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이 계실 수 가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있던 사람들, 마지막 네 번째 사람은 십자가에 함께 매달렸던 자입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2-43) 십자가를 둘러싸고 있었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시던 예수님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고 용기가 되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우편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였습니다. 우편 강도는 십자가의 고통가운데서도 자신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모습을 보고 참 그리스도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의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예수님을 통하여 희망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옵소서”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온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바로 이 네번째 사람 우편 강도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서 있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도 그 십자가에 달려져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린다는 것은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다는 것은 나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는 경험은 곧 회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들은 죄를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앉아서 예수님을 겉옷을 나눠 갖던 로마 군인들, 십자가 앞을 지나가며 예수님을 조롱하던 백성들, 십자가 앞에 서 있었지만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할 수 없었던 유대의 지도자들 그들은 모두 구원의 십자가 앞에 있었지만 각자의 욕망과 죄악에 눈이 어두워 구원의 빛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함께 지고 있던 강도만이 십자가의 잔혹한 고통과 수치 속에서 희망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생의 축복을 얻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십자가 앞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 앞에 앉아만 있지 말고, 그냥 지나가는 자가 되지 말고, 서서 말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