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미 오리의 새끼 사랑

1236

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최근 습관 하나가 생겼습니다. 집 문을 드나들 때면 습관적으로 서재 창 밑 공간에 눈길을 주는 겁니다. 인도와 집 벽 사이엔 직삼각형 모양의 작은 공간이 있는데, 그늘지고 방치된 땅이라 아이비 종류의 음지 식물과 생명력 강한 잡초들이 자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평소엔 잘 들여다보지 않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요즘 자꾸 그곳을 힐끔거리게 된 겁니다.

한 달 반쯤 전의 일입니다. 우편물을 부치러 나가던 아내가 화들짝 놀라서 뛰쳐들어왔습니다. “문 여는 소리에 오리가 날아가고 말았어요.” 다음 설명을 듣고서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오리가 날아간 자리를 보니 알이 있는거예요. 알 품고 있는 걸 방해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하네요.”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어미가 잠시 떠난 빈둥지에는 달걀 보다 약간 커보이는 아주 잘 생긴 알이 6개나 있었습니다. 기척이 있어 눈을 들어보니 달아난 어미가 멀리 가질 못하고 옆집 지붕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기념 사진만 찍고 얼른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날부터 우리 식구 일상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현관의 유리 쪽문을 통해 수시로 둥지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현관을 통한 출입을 통제하고 그라지 안쪽 문을 사용했습니다. 성경 공부하러 방문하는 교회 식구들에게도 양해를 구했습니다.

어미 오리를 관찰하는 중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알을 품고 처음 이 주 동안은 둥지를 비우는 시간이 제법 길었습니다. 이른 오후부터 저녁 시간까지 대여섯 시간을 비우더군요. 그 시간을 이용해서 먹이도 먹고 목도 축이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3주째부터는 거의 자리를 비우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턴 식구들의 현관 출입 통제도 풀 수 있었습니다. 식구들이 지나다녀도 꼼짝 않고 둥지에서 떠나질 않는 겁니다. 큰 딸과 함께 온 강아지 월리가 그 앞을 지나쳐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날은 밤새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천둥 번개가 거의 쉼없이 쿵쾅 번쩍였습니다. 새벽 예배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아내가 방으로 들어오면서 말했습니다. “어미 오리와 알들이 걱정돼 내려가 보았어요. 비가 이토록 퍼붓는데도 어미 오리는 요동도 없이 알을 품고 있네요.”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속옷 바람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과연 번개 칠 때마다 둥지를 지키고 있는 단단한 실루엣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순간 모성애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28일째 되던 날 아침, 현관문을 나서다 아내와 전 감탄사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어미 오리 곁에 새끼 한 마리가 앉아있는 겁니다. 참 귀엽더군요. 어미 오리 몸이 움직움직 하는 걸로 보아 부화된 나머지 새끼들은 어미의 체온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부화의 대장정이 막 끝난 겁니다. 그날 외출에서 돌아와보니 둥지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새끼들이 세상에 나오면서 벗어버린 껍질 조각들만 덩그러니 남아있더군요. 그후 다시는 오리 식구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거의 한 달 동안 어미 오리의 모성애를 지켜보면서 택하신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환란의 시간을 통과하며 노래하는 시편 기자들이 왜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지 그 이유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저희(주님의 양들)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날개 아래)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10:29)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오늘도 현관을 나서며 빈둥지쪽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