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요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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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범생이라는 말은 모범생을 가리키는 은어다. 요셉이 딱 이런 스타일의 인물이다. 부모 말씀도 잘 듣고, 시키는 일도 잘하고, 옷도 잘 입고, 형들이 말썽 피우면 열심히 일러바친다.

 

어느 날 요셉은 꿈꾼다. 꿈속에서 요셉과 그의 형제들은 추수해서 곡식 단을 묶는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요셉의 곡식 단은 일어서고 나머지 11명 형제의 곡식 단은 요셉의 곡식 단을 둘러서서 엎드려 절한다. 또다시 꿈꾼다. 이 꿈속에서는 해와 달과 11개의 별이 나오는데 이들 모두 요셉에게 절한다.

 

만약 독자가 이런 꿈을 꾸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부모 형제를 불러놓고 떠들어대며 자랑하겠는가? 만약 독자의 가정이 서로 사랑하고 화기애애하고 가족 모두가 당신을 무척 좋아한다면 아마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야곱의 가정은 아니다.

 

야곱은 그의 외삼촌 라반에게 사기당해서, 외삼촌의 두 딸을 모두 아내로 맞이했다. 원래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는데, 외삼촌이 큰딸 레아까지도 처리하는 바람에 야곱은 언니 동생을 모두 아내로 맞이해야 했다. 그런데 이 자매가 처녀 때는 사이가 좋았을지 몰라도, 결혼 후 한 남편을 섬기니까, 서로 사랑을 독차지 하려고 경쟁한다. 당시에 남편의 사랑을 받는 방법은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다.

 

야곱의 자식은 언니인 레아가 먼저 낳는다. 라헬이 더 예뻤고 야곱의 사랑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처지에 있는 레아를 불쌍히 여기셔서 레아의 태를 먼저 열어 주셨다. 그래서 레아는 르우벤으로 시작해서 시므온, 레위, 유다까지 사내아이 넷을 낳았다. 그러자 라헬이 약 올라서 자기 시녀 빌하를 야곱에게 주어 자신을 대신해서 아들을 낳게 한다. 그러자 레아가 질세라 자기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서 갓과 아셀이 태어난다. 그 뒤에 레아가 잇사갈과 스불론을 낳아 총 여섯을 낳았다. 실바는 둘을 낳았고, 빌하도 둘을 낳았다. 이렇게 총 10명의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 라헬은 하나도 낳지 못한다. 얼마나 그 속이 썩어들어가겠는가? 드디어 하나님은 라헬의 태를 열어주셔서 두 아들을 주셨다. 요셉과 베냐민이다. 안타깝게도 라헬은 막내 베냐민을 낳다가 죽는다.

 

이런 상황에서 야곱은 유독 요셉만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첫째, 요셉은 야곱이 나이 들어서 낳은 늦둥이였고, 둘째, 요셉은 야곱이 정말로 사랑했던 여인 라헬의 큰아들이었고, 셋째, 라헬이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라,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사뭇 쳤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야곱 집안은 이미 자식 차별 정책이 정착된 상태였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도 자식을 차별했다. 그 차별대우의 피해자가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도 이 정책에 동의한다.

 

창세기 37:3을 보면 야곱은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혔다고 한다. 나머지 형제는 허름한 보통 옷을 입었다. 그러니 자연히 요셉 형들은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의 형들이 다른 사람보다 인격이 더 악하기보다는 아버지 야곱이 잘못 처신했고 상황이 그렇게 흘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셉은 이런 집안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그랬을까? 아니면 너무 어려서 순진했던 걸까? 요셉의 행동을 보면 지혜롭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자기 꿈을 부모와 형제들에게 떠벌이며 자랑한다. 그래서 상황은 더 악화된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창 37:5). 심지어 아버지까지 그를 꾸짖는다.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창 37:10). 하지만 야곱은 요셉의 꿈을 마음에 간직한다 (창 37:11).

 

사실 요셉의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닌 일종의 계시였다. 문제는 요셉이 계시를 받은 다음에 지혜롭지 못하게 처신했다는 데 있다. 물론 요셉은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요셉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이 신앙생활에 주는 적용이 있다. 그것은 신앙생활은 지혜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