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잘 익혀야 할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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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 교회 담임)

복효근 시인은 말했다.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고. 아마도 상처 입은 치유자에게서 나는 그런 향기일 것이다. 물론, 여기엔 전제가 있다. ‘잘 익은 상처’이어야 한다는 것. 어떤 상처에선 독 냄새 혹은 썩은 내가 난다. 상처 많은 이가 다른 이에게 또 상처 주는 걸 우리는 자주 보지 않는가. 살면서 겪는 여러 종류의 시련도 잘 익어야 향기가 난다.

코로나19로 인해 얻은 우리의 상처는 어떻게 잘 익어갈 수 있을까? 곳곳에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한 전망들이 들려온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어떤 세상이 올까? 불안하다. 그러니 소위 ‘포스트 코로나’(Post-COVID 19)에 대한 예측과 전망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올 줄 예측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면,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어떨지에 대한 예측과 전망 또한 그리 미덥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만들어가는 건 더 중요하다. 희망은 어쩌다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얼어버린 겨울 땅 속에서 봄꽃이 피어나듯, 희망은 절망을 끌어안고 뒹구는 사람 속에서 자라난다. 하여, 뉴노멀에 대한 예측을 넘어 그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얻은 교훈을 잊은 채 맞이하는 뉴노멀은 또 다른 재앙이 될 것이다. 이 엄청난 생채기를 얻고도 아무런 변화 없이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떤 변화를 일구어가야 할까? 가장 절실한 건 서로 연결하고 연대하는 일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우리가 가장 크게 배운 교훈 중 하나는 온 인류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온 세계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나만 조심한다고, 내 나라만 잘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건강과 생명이 나의 건강과 생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 경험 중이다. 저 사람이 살아야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저 사람도 산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마치 이 세상과 분리되어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던 교회들을 향해 이번 사태가 말하고 있다. 교회와 세상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교회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이 시민사회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어디 그 뿐인가? 인간과 자연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우리는 몸소 경험 중이다. 인간이 자연과 동물을 함부로 대하면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하게 돌아오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한국 최고의 생물학자라 불리는 최재천 교수는 ‘이제 인류가 살아남을 유일한 무기는 다른 생물과의 공생 뿐’이라고 말한다. 강자가 약자를 죽이고 살아남는 게 아니라, 서로 손을 잡아야만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무한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 각자도생 하려고만 하면 다 같이 죽는다. 서로 다 연결된 세상이기에 남을 아프게 하면 나도 아프고, 남을 짓밟으면 결국 나도 짓밟힌다. 어떻게 하면 남을 밟고 오를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손잡고 함께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이 뜻밖의 재난이 우리를 향해 소리치고 있다.

더욱 연결하고 연대하자. 그제야 우리의 상처에 꽃향기가 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