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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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성경 사도행전20장 33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이 자신의 목회 사역을 마감하면서 장로들 앞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사역이 받는 것보다 주는 사역을 행하였음을 아름답게 고백하고 있음을 봅니다. 바울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 베풂을 당하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더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유 중심의 일상적인 복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립니다. 복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남에게 주고 베푸는 자가 많이 가진 자보다 복되며, 더 많이 가지려고 탐욕을 부리는 자보다 훨씬 행복 된 삶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많이 가진 자가 있음으로 풍요롭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베푸는 자가 있음으로 넉넉하고, 풍요롭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교회가 왜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귀함을 받았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서로 나누며, 섬기는 삶을 실천하였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은 것은 자신의 물질을 가난한 자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가진 자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 배고픈 자를 섬겼습니다. 이 모습을 본 세상 사람들은 큰 충격과 도전을 받고 예수님께로 몰려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6:38).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인용 한 것입니다. 바울은 목회를 하면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고 범사에 약한 자를 돕고, 주는 자가 되려고 친히 본을 보였습니다. 고백하기를 “내가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행20:35)”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3년간 에베소교회에서 사역하였을 때에 스스로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범사에 돕고 주는 자가 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는 또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행20:33)”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초대교회시대에 교회가 없는 지역에서는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힘썼기에 자금이 대단히 많이 필요했습니다. 일행이 쓸 생활비도 필요하고 전도비와 선교비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세상의 모든 물질, 영광과 탐욕을 과감히 버리고  오직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 생애를 받쳤습니다. 바울은 3년간 에베소교회에서 일하며 그 누구의 어떤 돈이나 물건도 탐하지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 받는 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주는 자가 되라- 하신 말씀을 인용하여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주시리라(잠19:7)말씀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감히 꾸어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3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작고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이야말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행복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기 위해 – 주는 자가 되라,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는 것은 물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의 아픈 마음을 같이 아파하며 사정을 잘 들어주면서 같이 울어주는 것도 주는 삶이요, 따뜻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것도 주는 삶입니다. 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으로 교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주는 삶인 것입니다. 나의 작은 것으로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