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카운티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사법 시스템의 복잡한 절차와 부족한 지원으로 또 다른 피해를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쿡카운티와 시카고시가 공동으로 구성한 ‘여성폭력 대응 태스크포스(Violence Against Women Task Force)’는 법원과 사법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을 촉구했다.
시카고 출신의 사라 브라운은 가정폭력 사건으로 지난 9년 반 동안 법적 다툼을 이어오고 있다.
그녀의 아들이 생후 6개월이었을 당시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법원은 임시 접근금지명령은 발부했지만 영구 보호명령 신청은 기각했다.
브라운은 “정말 외로운 싸움이었다”며 “처음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할 때부터 모든 서류를 혼자 작성했고, 법원 절차에서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모든 과정을 혼자 감당해야 했고, 결국 제도가 나를 다시 피해자로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브라운의 재판이 10년 가까이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담당 판사가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건을 맡은 판사는 모두 8명에 달한다.
이 밖에도 재판 기록 부족, 막대한 변호사 비용, 소송 비용을 내지 못할 경우 구금될 수 있다는 압박 등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정폭력과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크게 증가했으며, 이에 따른 사망 사건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쿡카운티와 시카고시는 올해 초 ‘여성폭력 대응 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다. 지난해 시카고 전체 살인사건은 감소했지만 가정폭력 관련 총격 사망은 오히려 증가한 데 따른 조치다.
태스크포스 구성에 참여한 도나 밀러 쿡카운티 커미셔너는 “지난해 약 7시간 30분 동안 열린 공청회에서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었다”며 “더 많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태스크포스는 최근 첫 번째 보고서를 발표하고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특히 가정관계법원(Domestic Relations Court) 개혁을 핵심 과제로 제안했다.
주요 권고사항은
모든 재판 과정의 녹화 및 무료 속기록 제공
무료 법률 지원 확대
조정(Mediation) 절차의 안전성 강화
온라인·화상 재판 시스템 개선
법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구금이나 구금 위협을 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 등이다.
밀러 커미셔너는 “현재 피해자 보호를 전담하는 단일 기관이 없다”며 “피해자들은 경찰, 보안관실, 주경찰, 여러 법원을 오가야 해 어디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조차 혼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처럼 분산된 지원체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들도 심각한 인력과 예산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 지원단체 ‘라이프 스팬(Life Span)’의 에이미 폭스 사무총장은 “예산 부족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약 60%를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폭스 사무총장은 “도움을 거절하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라며 “더 큰 문제는 다른 기관에 연결해 줄 곳조차 없다는 점이다. 결국 피해자들은 변호사조차 어려워하는 복잡한 제도를 혼자 헤쳐 나가야 하며, 이는 본인과 자녀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쿡카운티가 가정폭력 지원 예산을 편성한 것은 2023년이 처음이었고, 당시 대부분의 재원은 코로나19 구호기금에서 나왔다”며 “현재 해당 예산이 종료되면서 지원 규모도 크게 줄어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태스크포스에 따르면 출범 이후 6개월 동안 쿡카운티의 가정폭력 관련 살인 사건은 53% 감소했다.
밀러 커미셔너는 “여러 기관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문제 해결에 집중한 결과”라며 “6개월 만에 이 정도 성과를 거뒀다면 더 많은 자원과 투명성, 지속적인 관심이 더해질 경우 훨씬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 사무총장은 “가정폭력은 하나의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 문제”라며 “사법 시스템 전반의 지속적인 개혁과 함께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지원체계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점봉 기자>
[시카고 한인사회 선도언론 시카고 한국일보]
1038 S Milwaukee Ave Wheeling, IL 60090
제보: 847.290.82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