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2 F
Chicago
Tuesday, August 4, 2026
Home 특파원 명사인터뷰 이가희 특파원 길 잃은 화물에 심장을 이식하다… ‘트래픽 디자이너’ 이성수의 30년 항로

[트래픽 디자이너 이성수 대표] 길 잃은 화물에 심장을 이식하다… ‘트래픽 디자이너’ 이성수의 30년 항로

57
우영종합물류 이성수대표 (66세)

시카고 한국일보 심층 인터뷰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장맛비가 대기를 무겁게 짓누르던 7월 22일. 덥고 습한 여름의 한가운데서 고양시 백석동에 위치한 우영종합물류 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바깥의 변덕스러운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사무실 내부와 이성수 대표의 집무실은 반듯하고 정갈했다. 티끌 하나 허용하지 않은 책상과 흐트러짐 없는 그의 단정한 옷차림은, 30년간 험난한 물류의 바다를 헤쳐온 한 기업인의 철저한 자기관리를 무언(無言)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차분히 내려앉은 그의 눈빛 속에는 거친 파도를 잠재우는 심연의 고요함이 서려 있었다.

미래를 역산(逆算)하여 오늘을 깁다, 삶을 설계하는 ‘트래픽 디자이너’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오간 짧은 대화에서부터 그의 예리한 내공이 번뜩였다. “바이오 의약품의 복제는 케미컬(화학) 약품과 다릅니다. 원자 배열이 100% 똑같이 나오는 케미컬과 달리, 살아있는 세포를 다루는 바이오시밀러는 99.9%의 유사성만 가질 뿐이죠.” 가장 미세한 생명의 온도까지 통제해야 하는 최고난도의 콜드체인 물류를 다뤄온 전문가다운 통찰이었다.

이토록 정밀한 감각으로 전 세계의 물류망을 직조해 온 그에게, 1994년 우영종합물류의 돛을 처음 올렸던 날의 나침반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물었다. 2013년 자신의 저서 『트래픽 디자이너』를 통해 물류를 단순한 운송이 아닌 ‘경로의 설계’로 정의했던 그는, 잠시 찻잔을 내려놓고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당시 제 나침반은 먼 훗날인 80세의 제 모습에 가 있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눈앞의 목표를 좇을 때, 그는 가상의 미래인 80세의 시점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의상 디자이너, 헤어 디자이너 등 수많은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항로, 그리고 이 거대한 물류의 흐름을 디자인하는 ‘트래픽 디자이너’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이성수라는 청년은 단지 화물을 옮기는 사업가가 아니라, 80년이라는 웅장한 인생의 화폭 위에 자신만의 궤적을 치밀하게 스케치해 온 위대한 설계자였다.

싸고 좋은 물류는 없다, 오직 치열한 ‘마음의 독해(讀解)’가 존재할 뿐

“고객의 마음까지 날라 드린다.” 과거 한 언론을 통해 밝혔던 이 따뜻한 철학은, 속도와 효율이라는 차가운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물건을 맡기는 고객들은 누구나 ‘싸고 좋은’ 운송을 찾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세상에 그런 물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의 철학에서 ‘마음을 잇는다’는 것은 막연한 친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객이 처한 상황과 화물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치열한 독해(讀解)’의 과정이다. 이 대표는 화주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화물의 특성을 완벽히 장악한다. 어떤 화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제때 비행기나 배에 도착시키지 못하면 한 회사의 명운이 끝장나버리는 ‘사활이 걸린 생명줄’이기도 하다.

그는 이 벼랑 끝에 선 화주의 타들어 가는 속마음을 정확히 짚어낸다. 만약 제때 도착하지 못했을 때 벌어질 끔찍한 결과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물류의 길을 디자인하여 견적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것은 때론 일차적인 운송 비용이 더 들더라도 궁극적으로 회사를 살려내는 유일한 길이 된다. 결국 그가 배달하는 것은 물리적인 박스가 아니라, 화주의 불안을 잠재우고 신뢰를 담보하는 ‘안도감’이다. 화물의 가치를 넘어 그 속에 담긴 절박한 사연까지 세밀하게 읽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30년간 단 한 번도 변치 않은 우영종합물류만의 ‘마음을 잇는 물류’의 진면목이었다.

거친 풍랑을 잠재운 12글자의 돛, ‘근면’과 ‘신뢰’

30년이라는 긴 항해의 궤적을 찬찬히 더듬어본다. 결코 순풍만 불어오지 않았던 아득한 바다였다. 1997년 초유의 IMF 외환위기를 비롯해 숱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센 파도가 대한민국을 덮칠 때마다, 물류업계는 심연의 공포와 최전선에서 마주해야 했다. 수많은 배가 속절없이 침몰하던 그 혹독한 비바람 속에서, 우영종합물류를 굳건히 지켜낸 중심에는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 집무실에 걸려 있는 족자의 글귀가 하나 있습니다. ‘근위무가지보(勤爲無價之寶), 신시호신지부(信是護身之符)’라는 12글자입니다. 부지런함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장 귀한 보물이고, 신뢰는 내 몸을 지켜주는 든든한 부적이라는 뜻이지요. 이 단순하지만 묵직한 진리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라는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우리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지탱해 줬습니다.”

그의 철학은 결코 액자 속에 박제된 활자가 아니었다. ‘우영의 약속은 예외가 없다’는 단호한 슬로건 아래, 그는 무리한 일정이나 기업에 불리한 계약 조건 속에서도 고객과 맺은 약속만큼은 무조건적으로 지켜냈다.

“가장 극심한 타격을 입었던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모두가 쓰러지는 와중에도 우리는 해외 파트너들에게 전력을 다해 운송 대금을 지급하며 그들과의 약속을 사수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 등을 돌리지 않고 묵묵히 빚을 갚아나가는 뒷모습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신뢰의 사슬이 됩니다. 그 지독한 성실함 덕분에, 오히려 위기가 끝난 후 전 세계 파트너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회사가 더 큰 도약을 이뤄내는 기적 같은 동력을 얻게 되었지요.“

가장 차가운 빙점(氷點)에서 길어 올린 생명의 온기

전 세계가 팬데믹의 공포로 멈춰 섰던 서늘한 시간, 역설적이게도 가장 맹렬하게 박동해야 했던 것은 사람과 생명을 잇는 물류의 핏줄이었다. 우영종합물류는 2012년부터 다져온 콜드체인(저온 유통 체계)의 진가를 발휘해 진단키트와 백신, 임상약품 운송의 최전선에 섰다. 영하의 극저온 속에서도 그들이 다룬 것은 단순한 화물이 아니었다. 한 나라의 잃어버린 일상을 되살릴 ‘희망의 결정체’였기에, 직원들은 생명을 구원한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분초를 다투는 극한의 작업에 온몸을 던졌다.

차가운 철제 컨테이너 안에서도 이성수 대표의 시선은 늘 따뜻한 연대의 공동체를 향했다. 콜드체인 수요 급증으로 거둔 이익을 그는 기꺼이 사회와 임직원의 몫으로 돌렸다. 2020년 고양시에 KF94 마스크 3만 매를 선뜻 쾌척하며 지역의 방패막이가 되었고, 감염의 두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방주를 지켜준 직원들과 성과를 투명하게 나누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 혹독한 시기의 이익은 결코 대표나 회사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차가운 콜드체인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뜨거운 헌신이지요.” 이윤을 넘어 생명의 가치에 가닿는 연대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물류의 완성이라는 그의 굳건한 믿음. 그것은 칠흑 같은 재난의 한가운데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온기를 길어 올리고 있었다.

고양시 백석동에 위치한 우영종합물류 사무소에서 이성수대표 (좌)를 본지 특파원(우)이 인터뷰하고 있다.

사람이라는 나침반, 세대를 넘어 새로운 지도를 그리다

국내외 170여 명의 글로벌 임직원을 이끄는 이성수 대표의 경영 철학은 명료하다. “우영의 약속은 예외가 없다.” 이 준엄한 사훈은 고객을 넘어, 거친 바다에서 함께 노를 젓는 직원들을 향한 굳건한 신뢰의 맹세다. 그는 화주의 애타는 마음을 읽어내듯 직원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디자인해 왔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비즈니스의 축이 비대면으로 급변하는 것을 목격한 그는, 과거의 영광에 닻을 내리지 않았다. 거대한 시대의 파도 앞에서 오히려 ‘세대교체’라는 눈부신 돛을 올렸다. “이제 더 이상 해외 출장을 가지 않습니다. 모든 기회는 30~40대 후배들에게 온전히 넘겼습니다.” 자신이 전 세계를 누비며 개척하여 현재는 800여 개 파트너와의 연대를, 이제는 디지털 소통에 능통한 젊은 세대가 이어받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글로벌 물류 동맹의 거대한 무대 역시 든든한 후배들의 몫이 되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현장에서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 그것이 선배로서 그가 베푸는 가장 깊은 애정이다.

회사에서 함께 땀 흘리는 두 아들에게도 어떠한 특혜는 없다. 밑바닥부터 화물을 나르고 치열하게 뒹굴며 동료들의 존경을 얻어내지 못하면 리더의 자격이 없다는 서슬 퍼런 단호함. 그 이면에는 이 회사가 결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직원의 땀방울이 녹아든 ‘우리의 배’라는 묵직한 철학이 박동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뿌리, 고향의 흙내음이 빚어낸 거대한 연대

전 세계를 무대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배일수록, 거친 풍랑이 일 때 닻을 내릴 수 있는 단단하고 아늑한 항구가 필요한 법이다. 이 회장에게 그 영혼의 항구는 다름 아닌 ‘고향’과 ‘모교’, 그리고 그곳에서 맺어진 끈끈한 ‘사람 간의 연대’다.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났지만 남도 순천의 너른 품에서 푸른 소년기를 보낸 그는, 300여 명의 동문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고양시 지역 향우회의 회장을 역임한 후, 2024년에는 약 12,000명의 동문이 전국에서 활동하는 ‘재경순천중고총동창회장’하며 구심점 역할을 기꺼이 도맡아 왔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어냈던 ‘세계를 주름잡기 위한 순고인’이라는 당돌하고도 호기로운 슬로건은, 단순한 치기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기업인 이성수에게 평생을 관통하는 자양분이자 쉼 없는 동력이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81학번)에서 문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 또한 물류라는 거친 산업 현장에 인문학적 숨결을 불어 넣는 그만의 비결이다.

“문학을 공부하며 사람의 마음과 행간의 맥락을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물류는 결코 차가운 숫자의 나열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애타는 마음과 마음을 현실 세계에서 무사히 이어주는, 가장 극적이고 위대한 한 편의 서사시(敍事詩)와 같습니다.”

그가 성균관대 동창회보와의 인터뷰에서 “책임이 나를 성실하게, 최선이 나를 탁월하게 만든다”고 고백했듯, 자신의 뿌리에 대한 깊은 자긍심과 인간을 향한 문학적 감수성은 차가운 화물에 따뜻한 피를 돌게 하는 강력한 심장이 되었다. 두 달에 한 번씩 틈이 날 때면 훌쩍 남도로 내려가 고향의 흙내음을 가슴 깊이 들이마시고 돌아온다는 그. 옅은 미소 속에서, 세계라는 거대한 영토를 품기 위해 가장 낮은 곳의 뿌리를 잊지 않는 한 거장의 단단한 겸손을 엿볼 수 있었다.

인공지능 시대의 나침반, ‘신뢰’

두 시간에 걸친 묵직한 대화의 끝자락, 우리의 화두는 자연스레 미래를 향해 뻗어나갔다. 모든 것이 인공지능(AI)과 자동화 로봇, 무인 드론으로 대체되는 무서운 속도의 시대다. 기술이 인간의 고유한 자리를 위협하는 이 차가운 세계에서, 이 대표가 굳게 믿고 있는 물류업의 변치 않는 정수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단호하고도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리 기계와 기술이 고도화된다고 한들, 결국 그 기계를 만들어내고 통제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거대한 속도전 속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것은 역설적이게도 ‘사람의 진정한 마음’, 즉 ‘인문학적 접근’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리고 그 깊은 인문학적 접근을 경영의 언어로 응축해 낸 단어가 바로 ‘신뢰’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아무리 뛰어난 AI 알고리즘이 1초 만에 최적의 운송 경로를 짠다고 해도, 벼랑 끝에 선 화주의 불안과 애타는 설렘을 온기로 어루만질 수는 없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숨결을 실어 나르며 그 끝에 있는 누군가의 일상을 구원해 내는 일. 그것은 오직 더운 피가 흐르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위대한 영역이다. 이것이 바로 거대한 기계와 자본의 시대에, ‘트래픽 디자이너’ 이성수가 우리에게 던지는 눈부신 ‘본질의 반격’이었다.

미지의 항구에 내려놓은 생명의 향기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건물을 나서는 길, 무겁게 내리누르던 비구름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일산 호수공원 위로 늦은 오후의 투명한 햇살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길 없는 아득한 바다 위에 매일같이 새로운 생명의 길을 긋는 사람. 이성수 대표는 단순한 화물을 나르는 운송업자가 아니라, 사람의 땀과 눈물, 그리고 내일의 희망을 이어주는 이 시대의 진정한 ‘트래픽 디자이너(Traffic Designer)’였다.

창립 30주년이라는 찬란한 이정표를 넘어, 우영종합물류라는 튼튼한 방주와 이성수라는 노련하고도 따뜻한 선장의 앞날에 더없이 눈부신 순풍이 깃들기를 기도한다. 그가 새롭게 닻을 내릴 미지의 목적지에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뭉클한 사람의 향기가 한가득 하역되고 있을 것이다. 속도와 효율만이 미덕이 된 이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의 팍팍한 가슴 속에도, 가장 차가운 곳에서 가장 따뜻한 생명의 온기를 길어 올리는 이 위대한 항해의 벅찬 감동이 고스란히 가닿기를 소망한다.

[취재/글 = 이가희 특파원]

이가희 시카고한국일보 한국특파원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시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