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2 F
Chicago
Friday, June 5, 2026
Home 종합뉴스 로컬뉴스 “파독 간호사의 희생, 3대에 이어진 삶의 유산”

“파독 간호사의 희생, 3대에 이어진 삶의 유산”

2
지난 4일, 생방송 시카고 지금에 출연한 사진 오른쪽부터 로자 양 씨, 양정덕 여사님, 손자 덱스.

양정덕 씨 가족, 독일에서 미국까지 60년 여정 돌아봐

1960년대 대한민국은 가난과 생존의 기로에서 있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을 떠나 독일 광산과 병원으로 향했고, 그들의 땀과 희생은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의 이야기는 자녀와 손주 세대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 WINTV 생방송 시카고 지금에는 독일 파견 간호사 출신인 양정덕 씨와 딸 로자양 씨, 손자 덱스(Dax) 씨가 출연해 한 가족이 걸어온 60여 년의 여정을 함께 나눴다.

양정덕 씨는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해외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미국이나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싶었는데 독일에 먼저 자리가 나서 독일로 가게 됐다”며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였지만 고등학교 때 배운 독일어 덕분에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독일 생활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일에 대해 묻자 “일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는 “독일에서 결혼하던 날 한국에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를 꼽았다.

딸 로자 양 씨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삶이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의 이야기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역사인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환점은 지난 2024년 한국 방문이었다. 그는 파독 광부, 간호사를 위한 파독전시관을 찾은 뒤 부모 세대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로자 씨는 “전시관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부모님의 삶을 알게 되면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며 “택시 기사로부터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부모님의 경험이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역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의 어머니 삶에 대해 “병원에서 장시간 근무하며 번 돈 대부분을 한국 가족들에게 보냈다”며 “향수병에 시달리는 한국 간호사들을 도우며 독일어 실력도 키웠고, 항상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양정덕 씨는 독일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 이후 미국으로 이민했다. 로자 씨는 “부모님이 낯선 나라를 탐험하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세상을 이해하고 여행하고 싶은 꿈을 키웠다”며 “이 유산을 다음 세대와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이 미국에 정착하게 된 과정도 소개됐다. 로자 씨에 따르면 부모는 뉴욕과 디트로이트를 둘러본 뒤 시카고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선택했다. 처음에는 리빗 스트리트 인근에 거주했으며 이후 훔볼트파크 지역으로 이주했다. 또한 독일에서 온 파독 한인들은 동우회를 결성해 링컨스퀘어 지역에서 정기 모임을 가졌으며, 1970년대 중반 가족초청 이민이 가능해지면서 친척들이 한국에서 시카고로 이주해 알바니파크 지역에 정착했다. 이후 많은 한인 가정들이 나일스를 비롯한 북서부 교외 지역으로 이주하며 오늘날 시카고 한인사회의 기반을 형성하게 됐다.

어머니의 삶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묻자 로자 씨는 깊은 존경심을 드러냈다. 그는 “어머니는 뛰어난 기억력과 지혜를 가진 분”이라며 “간호사로 거의 50년 동안 환자들을 돌보며 위로와 연민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겪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며 “끊임없는 희생 속에서도 강한 회복력과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했고, 그 모습은 지금도 제가 본받고 있는 삶의 자세”라고 덧붙였다. 로자 씨는 어머니가 물려준 가장 큰 유산으로 ‘삶의 태도’를 꼽았다. 그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건강,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가치가 어떤 물질적인 유산보다 소중하다”며 “아버지는 어머니의 헌신을 통해 ‘효도’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고, 이제 그 가르침을 다음 세대가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자 덱스 씨는 2023년 독일 여행 중 처음으로 할머니의 파독 간호사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과 함께 독일의 오래된 광산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를 통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며 “그때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와 가족의 여정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방문 당시 가족의 역사를 접한 소감을 묻자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할머니는 항상 다정하고 따뜻한 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며 “이제는 할머니를 단순히 손주에게 음식을 챙겨주는 분이 아니라 가족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덱스 씨는 서울 경복궁 방문당시의 특별한 추억도 전했다. 그는 “양반 스타일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본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셨다”며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고 하셨는데, 그 순간 가족의 역사와 더 깊이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로자 씨는 어머니의 삶을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어머니는 지칠 줄모르는 헌신적인 간호사이자,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사람들을 돌보며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 시작된 독일행. 그 희생은 가족을 살렸고, 새로운 삶을 열었으며, 이제는 3대가 함께 기억하는 소중한 역사로 남아 있다. 파독 간호사 세대가 남긴 발자취는 오늘날 한인사회의 뿌리이자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전혜윤 기자>

[시카고 한인사회 선도언론 시카고 한국일보]
1038 S Milwaukee Ave Wheeling, IL 60090
제보: 847.290.8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