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 F
Chicago
Friday, March 6, 2026
Home 종합뉴스 교육 <아네스의 세계미술관 산책 11> 시카고 미술관과 조지아 오키프

<아네스의 세계미술관 산책 11> 시카고 미술관과 조지아 오키프

17
<오키프 전시실>

시카고 미술관 8 – 20세기를 바꾼 여성 화가의 시선

시카고 미술관은 20세기 미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이름,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의 출발점이었다. 오키프를 대신할 만한 20세기 여성 화가는 없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녀는 여성 화가라는 범주를 넘어 미국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덕분에 미술관은 오키프의 작품 23점과 그녀의 남편이자 미국 근대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의 작품 천여 점을 소장한다.

<오키프 전시실>
오키프는 시카고 북서쪽 위스콘신주 선프레리의 아일랜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넓은 들판과 끝없는 하늘, 계절마다 달라지는 빛을 보며 자란 경험은 훗날 그녀가 자연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눈을 길러 주었다. 1905년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시작한 그림 공부는 단순하게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자신이 느낀 색과 형태의 울림을 화면에 담았다.

오키프가 화가로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꽃 그림이다. 화면을 가득 채울 만큼 확대한 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구도였다. 시카고와 뉴욕의 분주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이 꽃을 스쳐 지나가듯 바라본다고 느꼈다. 그녀는 꽃을 거대하게 확대해 누구도 외면할 수 없게 만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 확대는 단순히 크게 그린다는 뜻이 아니다. 꽃을 눈앞에 바짝 들여다보듯 화면에 담아내는 방식이다. 그녀는 “사람들이 꽃을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크게 그렸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는 시선은 당시 후원자였던 사진 작가 스티글리츠의 영향도 엿보인다. 그는 사진에서 대상을 멀리서 전체로 담기보다 한 부분을 과감히 클로즈업해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들어냈다. 오키프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꽃과 잎을 화면 가득 확대했다. 시카고 미술관의 〈데이지 꽃과 노란 히코리 잎 Yellow Hickory Leaves with Daisy〉에서 잘 드러난다. 하얀 데이지 꽃과 노란 히코리 잎이 화면을 채운다. 멀리서 보면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잎맥과 꽃잎의 결이 섬세하게 살아난다.

〈데이지 꽃과 노란 히코리 잎〉 1928 유채화 76.5×101.6

배경을 지우고 대상을 과감히 확대하는 이 방식은 오키프의 대표적인 화법으로 자리 잡는다. 그녀는 꽃을 장식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형태와 색, 선의 흐름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길게 뻗은 노란 잎은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고 작은 데이지는 그 위에서 고요한 중심이 된다. 평범한 꽃은 하나의 힘 있는 이미지로 탄생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시선도 달라진다. 소박한 대상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이다.

당시 일부 남성 비평가들은 확대된 꽃을 여성의 몸에 빗대어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평가는 다르다. 오키프의 꽃은 특정한 상징이 아니라 자연의 형태와 색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 그림으로 이해한다. 오키프의 꽃은 어떤 은유에 갇히기보다 자연의 형태와 색을 새롭게 인식하는 회화적 시도로 성공하였다. 익숙한 대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방식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바꾸어 놓았다.

그녀의 시선은 가까이 보는 꽃에서 머물지 않았다. 뉴욕에서는 마천루를 그리며 수직적인 도시의 빛과 힘을 담았다. 뉴멕시코에서는 사막과 동물의 뼈를 통해 더욱 단순하고 고요한 풍경을 담았다. 그리고 그 여정의 정점은 노년에 그린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11점의 연작 구름 풍경이다. 시카고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인 〈구름 위의 하늘 IV Sky above Clouds IV〉는 가로 7미터가 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그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구름 풍경에 깊이 매료되어 그 감동을 캔버스 위로 옮겼다.

〈구름 위의 하늘 IV〉 1965 캔버스에 유채화 243.8 × 731.5

둥근 구름은 반복되며 끝없이 이어진다. 푸른 하늘은 분홍과 오렌지빛으로 부드럽게 변한다. 관람객은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대신 하늘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새로운 시점을 경험한다. 난방도 되지 않는 차고에서 오랜 시간 작업해 이 대작이 탄생하였다. 1970년 회고전을 거쳐 결국 시카고에 정착한 이 그림은 오늘날 미술관의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다.

오랫동안 그녀는 여성 화가나 23세 연상의 저명한 사진작가 남편 스티글리츠의 후광으로 성공한 화가로 비춰졌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성취는 이런 설명에 머물지 않는다. 자연의 모양과 색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탐구하며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완성해 낸 것, 그것이 오키프의 특별함이다. 오키프의 시선은 꽃에서 사막과 뼈, 그리고 하늘 위의 구름으로 이어지며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을 단순하고 분명하게 보여준다.

시카고 미술관의 미시간 애비뉴 입구 중앙 계단을 천천히 오르면 거대한 구름 떼와 마주친다. 계단 끝 높은 벽면을 가득 채우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캔버스는 마치 미술관의 천장이 열리며 끝없는 지평선으로 향하는 듯하다. 77세의 오키프가 완성한 이 작품은 비행기 창밖에서 발견한 무한한 자유와 고요함을 관람객의 시야에 가득 채운다.

시카고 미술관에서 관람객은 단지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본 한 예술가의 시선과 20세기 현대미술의 흐름을 다시 써 내려간 정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한 여학생이 이 자리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거장이 되기까지 그 시선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그림을 통해 따라가게 된다.

<이 아네스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