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중서부 지역 최초로 시행을 앞둔 ‘말기 환자 조력 존엄사 법(End of Life Options for Terminally Ill Patients Act)’을 두고 장애인 권익 단체들이 제기한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이 연방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오는 9월 12일 토요일 시행을 앞둔 이 법은 소위 ‘뎁의 법(Deb’s Law)’으로도 불리며, 일부 말기 환자들이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법적 공방의 핵심은 ‘소송 제기 자격(Standing)’ 여부였다. 원고로 참여한 경추 마비 장애인 에보니 페인과 유나이티드 스파이날, 프로그레스 독립생활 센터 등 장애인 권익 옹호 단체들은 이 법안이 장애인을 차별하고 압박감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사들이 생명 연장 치료 대신 조력 존엄사를 권유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자신들이 자살 예방 프로그램 강화 등 추가적인 부담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존 탑(John Tharp) 연방 판사는 원고 측의 이러한 주장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가정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페인의 경우 의사로부터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적이 없고 본인 역시 조력 존엄사 절차를 밟을 의사가 없으므로, 현재 시점에서 당장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해당 법률은 환자 본인이 직접 구두와 서면으로 요구할 때만 시작되며, 의사는 호스피스와 완화치료 등 모든 대안을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하므로 기존의 의료 기준이나 윤리가 훼손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장애인 단체들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고, 원고 측에 30일 이내에 소송 전체를 기각하지 않아야 할 타당한 이유를 소명하라고 명령했다.
한편, 본보는 앞서 지난 9월 5일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는 법률 단체 ‘베켓’이 시카고 대교구장 블레이즈 쿠피치 대주교, 가톨릭 수녀원, 그리고 기독교 및 가톨릭계 의료진과 약사들을 대리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며, 일리노이주 정부가 추진하는 ‘말기 환자 조력 존엄사 법안’의 시행을 막아 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처럼 장애인 단체들의 가처분 소송은 일단 벽에 부딪혔으나, 종교계와 의료계가 제기한 별도의 소송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아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일리노이주는 미국 중서부에서 최초로 조력 존엄사를 합법화한 주이며, 전국적으로는 12개 주가 이를 허용하고 있다.
<김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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