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헌수의 경제읽기] 빨간 깃발 법(Red Flag 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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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

작년에 벌어진 일이다. 서울에서 시카고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공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택시 한대가 섰다. 창문을 열고 택시기사가 나에게 소리쳤다. “공항 가세요? 버스비만 주시고 타세요.” 나는 머뭇 거렸다. 택시기사는 다시 소리쳤다. “제가 어차피 공항에 가야하니까 통행료만 내시면 공항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순간 어디 염전에 납치되는 것은 아닌지 잠깐 두려웠다. 하지만, 기사양반 덩치를 보니 해볼만 하다. 짐을 싣고 탔다. 기사분은 여행사 소개로 공항에 자주 간단다. 여행사에서 연락이 오면 공항에 가서 외국관광객을 픽업해서 서울에 있는 호텔까지 데려다 준단다. 그렇게 하고 5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공항까지 가는 통행료가 늘 문제라는 것이다.  통행료 6,600원을 자기가 부담해야되니 말이다. 그래서 공항에 가는 길에 나같은 사람을 태운단다. 통행료라도 해결하려고 말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사람들이 잘 안탄단다. 열명중에 세사람 정도만 탄다고 했다. 당시에 서울에서는 택시 기사들이 데모를 하고 있었다.  카카오 택시에서 하려는 ‘카풀 서비스’를 반대하는 데모였다. 데모를 하던 택시기사 한분은 분신 자살까지 했다. 기사양반은 카풀서비스가 도입되면 안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카풀 서비스는 카카오가 출퇴근 시간에 차를 가진 사람들을 연결해 주려고 했던 서비스다. 차를 가진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을 태워주고 차비를 받는 서비스다. 택시비보다 싸고 아무나 쉽게 할 수있다. 그때 기사분은 이런말을 했다. “미국에서도 우버를 반대한다고 8명이나 자살을 했다는데 결국 우버가 들어왔잖아요? 한국에서는 이제 겨우 한명 죽었는데 정부가 꿈쩍이나 하겠어요?” 나는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카고에 돌아와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다. 그분 말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뉴욕에서만 2018년 한해 동안 택시 기사 8명이 자살을 했다. 그들이 자살한 이유는 대부분 생활고 때문이었다. 그리고 죽은 사람중에는 우버 기사도 있었다. 그들은 우버를 반대해서 자살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우버때문에 경쟁도 많아지고 택시비도 낮아져서 생활고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2015년에 ‘우버’를 몰아낸 전력이 있었다. 이번에도 한국 정부는 결국 카풀 서비스를 허가해 주지 않기로 했다. 허가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또다시 택시 기사들이 이겼다.

영국에는 한때 ‘빨간 깃발 법(Red Flag Acts)’이라는 법이 있었다. 1865년 즈음에 있던 법이다. 당시에 영국의 도로에는 대부분 말이 끄는 마차가 다니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말과 마부가 끌지 않는 마차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이 끌지 않는 자동차에는 엄격한 도로교통법을 적용했다. 이 도로교통법이 바로 빨간 깃발법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는 빨간 깃발법의 내용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선 자동차는 시속 4마일 이내로 달려야 한다. 도심에서는 시속 2마일이 제한 속도였다. 게다가 자동차는 최소한 세사람이 작동을 해야 한다. 한사람은 운전을 한다. 두번째 사람은 보일러에 연료를 넣는다. 문제는 세번째 사람이다. 이 세번째 사람은 자동차 앞에서 빨간 깃발을 들고 뛰어 다니며 다른 마차에게 경고를 한다. 자동차가 지나가니까 조심하라고 말이다. 그러다가 빨간 깃발을 든 사람이 위험하다고  깃발을 들면 뒤에 따라오던 자동차는 멈추어야한다. 자동차 한대를 움직이기 위해서 그 앞에 사람 하나가 깃발을 들고 뛰어 다녔을 장면을 지금 상상 해보면 참 웃기다. 빨간 깃발을 든 사람은, 그나마 힘들면 말을 탈 수 있었다고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법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속도도 지나치게 제한했고,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세사람이나 필요했으니 사람들이 차를 멀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빨간 깃발법은 지나친 규제가 과학이나 문명의 발전을 막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아주 좋은 예다.

세금보고를 하러 오시는 고객분들중에 상당히 많은 분들이 부업으로 우버 영업을 한다. 경기도 좋지 않은데 미국에 우버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나도 혹시 사업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지 우버를 할 생각을 한다. 꼭 필요한 규제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불필요한 규제는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기술발전을 막는등 커다란 부작용을 낳는다.<공인회계사/변호사/Taxon대표/시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