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건성으로 신앙생활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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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한 성도가 큰 죄를 지었다며, 이메일을 통해 상담을 요청했다. 무슨 문제냐고 물었더니, 음행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메일 내용의 뉘앙스는 자신의 죄에 대한 반성과 회개보다는 교회와 목회자들이 자신을 비롯해 교인들에게 죄에 대한 경고 메시지와 회개의 말씀을 전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처럼 표현했다.

그래서 예배 때 전했던 설교를 찾아 보았다. 그런데 그 성도가 음행의 죄를 범했다고 했던 날짜 이전에 몇 번이고 음행의 죄에 대한 말씀을 전한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다시 그 성도에게 메일을 보내서, “성도님은 이미 음행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설교와 말씀을 통해, 몇 번이고 들으셨습니다. 지금 성도님의 문제는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나름 진지한 신앙적 고민이라고 하면서 질문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님이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의 나무를 만들지 않았으면 우리는 죄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런 책임전가식의 신앙은 실제로 교회 현장에 팽배해 있다. 지루한 설교 때문에 신앙이 자리지 않고 반복적인 성경공부 내용 때문에 믿음이 커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데, 그리스도인이라고 특별할 수 없지 않느냐면서 일상 속에서의 죄의 문제를 각자의 기준에 맞춰 경건성의 경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신앙과 믿음의 삶에 늘 불만과 불평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잘못은 타인과 교회 지도자, 교회 공동체, 신앙의 동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에게 있을 뿐, 정작 본인은 아무 잘못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면서 교회와 목회자가 자신들이 잘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를 말씀과 영성으로 지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 영적 무감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고, 믿음의 삶에 대해서 건성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행위가 단 1불이라고 이익이 남는 장사라면, 그들이 그렇게 무감각하고 건성으로 일을 하겠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사 42:18)고 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무감각을 경고했다. 그들은 귀가 있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주님의 역사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3000년 전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요즘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건성으로 믿음생활을 하려는 영적 무감각에 심각하게 빠져 있다.

7-80년 TV설교가로 유명세를 타던 지미 스웨거트(Jimmy Swaggart) 목사는 간음의 문제로 TV 앞에서 눈물로 반성하고 회개를 하며 강단을 떠났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본연에 자리로 돌아왔다. 그 이후,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감동받지도, 신뢰하지도 않았다. 그는 영적 무감각에 전형적인 잘못된 회개의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인 목회자 중에 한 명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런 목회자가 너무 많다. 이런 리더십 아래 있는 건성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성도들은 어떻겠는가?

한참 신앙적으로 방황할 때 필자는 아버지로부터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들었다. “건성으로 신앙생활하지 마라.” 그 충고에 필자는 영적으로 큰 도전을 받았다. 영적 방황의 시기에 어쩌면 아버지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반대로 아버지는 필자의 신앙이 건성이라고 지적했다. 너무도 정확한 진단이었고, 그 경고에 필자는 정신을 차리는데 도리어 힘을 얻었었다.

우리는 얼마나 건성으로 신앙생활을 하는가? 그런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그럴 바엔 믿는다고 하지 마라.” 대충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건성으로 신앙생활하는 직분자들이 있다. 영적 무감각으로 천국가겠다는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바뀌지 않는다면 교회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