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간관리도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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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시카고 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일을 3시간에 하도록 할당을 받았다. 그런데 일이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끝날 것 같은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불필요한 작업과 제 3의 일을 섞어 가며 할당 받은 시간을 채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조직 사회에서는 일을 일찍 끝내면, 왜 일찍 끝냈느냐고 부정적인 지적을 받거나 할당된 일 이상의 잔업을 더 하도록 지시를 받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연중에 “파킨슨의 법칙”을 따르면서, 무의미한 작업으로 쓸데 없이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일을 일찍 마치는 것이 마치 불성실하게 일을 처리한 것처럼 여겨져 부정적 평가를 받거나 어차피 남는 시간에 잔업을 더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파킨슨의 법칙”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직사회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파킨슨의 법칙에 따라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의도된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칙을 우리 인생의 당연한 공식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효율적인 자기 시간관리 체계를 세울 수 있다. 즉 나에게 있어서, 파킨슨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법칙이 발생되는 일과 스케줄을 줄이고 관리하면, 우리는 시간 사용을 주도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가 있다. 열 처녀들이 저녁 늦은 시간에 각자의 신랑을 기다린다. 그러나 밤이 되어서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 모두 잠에 들었다. 깊은 밤이 되어서야 각 신랑이 도착했다. 밖에서 신랑들이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고 열 처녀들은 서둘러 일어나 등불을 가지고 나가는데,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예비된 기름이 있어 불을 다시 켜고 밖에 나가 신랑을 맞이했지만, 어리석은 처녀 다섯은 등불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신랑을 만나지 못했다는 비유 이야기이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기름을 시간으로 비유해 보았다. 열 처녀는 등불이 모두 타오를 때까지 최선을 다해 기다렸지만, 기름이 다 타 없어져 어둠이 되었을 때, 모두 잠이 든다. 여기서 수면의 시간, 곧 기름이 떨어져 불이 꺼진 시간이 파킨슨의 법칙이 적용되는 시간이다. 곧 기름이 불 타오는 시간이 끝나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 시간을 파킨슨의 법칙대로 사용한다. 곧 기름을 준비하거나 관리하거나 조절하지 않는 것이다. 기름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지게 되면, 그냥 시간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쓸데 없는 시간(기름)을 보내고, 기름(시간)을 준비하거나 관리하지 않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늦게 온 신랑을 맞이할 수 없게 된다. 대신에 슬기로운 처녀 다섯은 파킨슨의 법칙을 극복하여 시간(기름)을 준비하고 관리해 신랑을 맞이한다. 필자는 이 비유의 교훈이 종교 차원을 넘어 바쁘고 분잡한 현대인의 삶을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바른 시간관리의 필요성에 대한 일침을 주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예수는 숨겨진 비유 이야기를 통해, 시간관리가 신앙에서도 중요함을 알게 해 준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 나라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성령의 임재와 믿음의 확신,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그것들이 더욱 효율적이고 의미 있는 하나님 나라의 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인류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 또한 다른 신앙의 조건들을 살피고 실천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100시간 기도한다고 구원받지 않는다.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365일 듣는다고 천국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나 믿음 있어요”라는 입술의 고백만이 구원받은 자의 확신 될 수 없다. 제 아무리 그런 것들이 있더라도 늦은 시간이 되어 모두 소진하고 잃어버리게 되면, 불은 꺼질 것이다. 그리고 진짜 신랑이 올 때, 그것들을 적절하게 준비하고 관리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은 처녀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신앙을 고백하고 찬양을 힘차게 부르는 것은 좋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처럼 관리하고 조절해야 한다. 시간을 관리하는 것도 신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