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기도문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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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여러분들은 기도할 때 어떤 말로 시작하시나요? 주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 담긴 뜻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님은 기도를 시작할 때 우선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십니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원어의 어감을 살리려면 아빠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주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라시는 겁니다. 주님의 입술에서 “아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제자들을 깜짝 놀랐을 겁니다. 그리고 아주 불편했을 겁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이렇게 불러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일까요?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은 필사를 위해 규칙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는 법 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있는 “엘로힘”이라는 단어를 필사할 때마다 기록하기 전 반드시 사용하던 펜을 정결하게 씻은 후, 다시 잉크를 찍어 사용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기록할 때는 이 거룩한 이름이 더렵혀지지 않도록 온몸을 씻어야 했고, 펜도 전용 펜을 사용해서 기록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는 경외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니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라는 주님의 말씀은 파격이었을 겁니다. 주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께선 너희들을 자녀라고 부르셨는데, 너희들은 왜 거리감을 두고 멀찍히 떨어져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느냐. 그러지 말고 너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어린 자녀처럼 친밀하게 다가가라. 주님은 이 친밀함을 통해 기도가 진솔해지길 원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이 아빠 앞에 가서 자기의 필요를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다 쏟아내듯이 말이죠. 또한 주님은 친밀함 속에서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편안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드리길 원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이 무슨 일만 생겨도 아빠 앞으로 쪼르르르 달려가듯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때 기도자의 영혼에 또 하나의 태도가 자리잡게 됩니다. 감사함 입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이 먼저 나오고, 아버지를 설명하는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이 그 뒤를 따릅니다. 주님은 “하늘에 계신”이라는 수식어을 통해 우리가 아빠라고 부르는 대상이 얼마나 광대한 분이신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십니다. 아빠라는 표현을 통해 막 싹트고 자라나고 있는 친밀감을 망가뜨리려는 건 결코 아닙니다. 다만 감사함을 잊지말라 하시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위치에 절대 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온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사랑으로 구원해 그 자리에 세워주신 겁니다. 주님은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 은혜를 리마인드 해주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이 감사의 마음은 기도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드리는 내용이 100% 이뤄지는 영적 장치가 아닙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뜻이 100% 이뤄지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기도 중, 우리 계획이나 뜻과 다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생깁니다. 이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기도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반응이 크게 다릅니다. 감사함 속에서 기도 드리는 성도는 하나님의 뜻이 자기의 것과 다르더라도 무조건 순종합니다. 하지만 감사함 없이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거나, 들었더라도 불평하기 쉬운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을 두신 겁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기도는 이렇게 시작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