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실한 믿음과 신실한 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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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위대한 블롱댕으로 알려진 프랑스 곡예사가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장-프랑수아 그라벨레”입니다. 이 사람은 믿음을 주제로 한 수많은 설교에 예화로 등장하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외줄타기로 건넌 사람입니다. 그는 35세때 처음으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넌 것을 시작으로 눈을 가리고 건너기도 하고, 매니저를 업고 건넜으며, 손수레를 밀면서 건너기도 하고 죽마를 타고 건너기도 했을 뿐 만 아니라 심지어 폭포 위 한 중간 줄 위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두려움 없이 마치 자기 집 안방을 드나들 듯이 외줄로 오고 갈 수 있었던 블롱댕. 한번은 그의 외줄타기를 영국의 왕자가 구경하러 왔습니다. 그 날도 위대한 블롱댕은 거침없이 폭포를 건너게 됩니다. 이를 본 왕자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자 블롱댕이 그에게 왕자님을 업고 폭포를 건너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영국의 왕자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까요? 왕자는 그가 얼마나 줄타기를 잘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서 자유 자재로 외줄을 타면서 폭포를 건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제안을 받아 들이지 못했습니다. 왕자는 자신의 생명을 그에게 맡길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블롱댕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믿음은 반드시 그에 따르는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대한 정의를 가장 분명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성경의 구절은 히브리서 11장 1-2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 불리웁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믿음의 삶을 살았던 성경의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의 말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하는 말씀을 자세히 풀어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원어인 헬라어 ‘피스티스’는 신뢰, 확신, 신념 또는 신실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의미를 조금 더 그 뿌리부터 살펴 본다면 ‘믿음’, ‘신뢰’와 같이 추상적이거나 마음의 심리적 상태를 나타내는 것 이상의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행위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피스티스’라는 단어의 어근은 ‘계약이나 약정을 존중하는 자세나 행동’을 나타내었습니다. 고대의 전쟁에서 누군가와 휴전을 맺기 위해서는 그 신실성을 보장하는 계약을 맺는 것이 필요했는데 이것을 나타내는 단어가 ‘피스티스’였습니다. 아울러 이 개념은 고대로부터 종교적인 어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신들이 동맹이나 약정에 대하여 보증하는 모습을 나타내었으며 인간들이 위협적인 위험에 직면할 때 구원해 주는 신들의 능력을 나타내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믿음이란 반드시 그 믿음이 증명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과 신실한 행위가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의 예들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고, 믿음으로 노아는 방주를 지었으며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기록된 이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믿음으로 무엇 무엇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입으로 시인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외치는 자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믿음으로 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은 단순한 마음의 결심이나 상태를 의미하는 것 이상으로 행동과 태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믿음과 행함, 진실된 믿음에는 반드시 신실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진실한 믿음과 신실한 행함이 함께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