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발품 팔아 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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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혜김성혜(문인)

 

지난번 글, 시계 팔아 산사랑을 읽고 독자 몇 분이 글을 보내왔다. “시계 팔아 산 선물, 뭉클했습니다. 또한, 고민거릴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인데, 나도 더 늦기 전에 시계 팔아 사랑 사는 그런 마음씨 가져야하는 건데…. 성탄절인데…. 싶어서요.”

이왕 시작한 이야기 지면상 못다 한 전 선생의 이야길 더 전하고 싶다.

부모 밑에서 자란 정상아도 문제아 되기 쉬운 세상이다. 고아로써는 말하면 잔소리다. 더구나 눈뜨고 코베어 간다는 각박한 전후의 한국에서야 말 해 뭣하랴?

“고아이긴 했지만 전 주변서 사랑 많이 받으며 자랐어요. 이야기 하나 더 해 드릴게요. 입대하면 가족이 면회 오는 것 이상 좋은 것은 없습니다. 저처럼 부모님 안 계시고, 누님은 출가 한 지 오래고, 남동생 하나 있지만 어리고…. 이렇듯 면회 올 가족이 없는 사람의 심정은 당해보지 않고는 모르지요. 면회 나가는 녀석들이 부러워 미치고 환장하겠다는 소리가 저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소릴 거예요.

하루는 저한테도 면회 온 사람 있다는데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면회요? 저요? 당연히 귀를 의심했지요. 매형님이 논산 훈련소로 오신 겁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떳떳하게 같은 사람의 부류에 속한다, 는 것을 인증받은 느낌이거든요. 얼마나 기뻤던지요. 그 많은 훈련병 중 나 홀로 훈련 끝나기까지 면회 오는 사람 하나 없다면 나도 사람에 속하는가 싶지 않겠어요? 매형님이 바쁜 농사일을 거르시고 누나가 만든 떡을 보자기에 싸들고 오신 겁니다.”

홀홀 혼자라고, 찾아올 사람 없다고 단념하고 있던 훈련병에게, 고아로 자라 상처 많은 신참에게, 매형이 떡을 가지고 오신 거다.

“면회 끝나고 가시기 전에 매형께서 내 손에 꼬깃꼬깃 접어진 진땀 묻은 돈을 두어 장 쥐어 주시는 거예요. 전 그것도 떡 받듯 냉큼 받았지요.”

농사짓는 분이라면 뻔할 텐데 처남 손에 돈까지 주다니 너그러운 분이구나, 싶었다.

“제대 후에 누님한테 매형님이 찾아 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누님이 그제야 실토하는 겁니다. ‘인석아, 그게 어떤 돈인지 몰랐지? 매형이 집으로 돌아와야 할 버스값을 널 주고는 논산서 무주 구천까지 이틀 길을 꼬박 걸어오셨단다.’ 하구요. 저는 그런 사랑 받고 살았습니다.” 하며 웃으신다.

씹지 않고 넘긴 떡이 넘어가다 목에 걸린 듯 한동안이나 들러붙어 있었다. 지금도 걸려 있는듯하다. 뵌 적은 없어도 그 매형님께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누님이야 형제시니까 서로 닮아 마음 고우시고 반듯한 분이실 거라 짐작하지만 매형님은 피도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분이신데 어찌 그리 깊고 착한 마음씨를 갖고 계신지 놀랍네요. 아직 살아 계세요?”

“돌아 가신 지 오래 됐지요.”

“그분 어떻게 사셨어요? 종교 갖고 계셨나요?”

“그냥 평범하게 농사짓는 분이셨습니다. 누님은 매형님 돌아가신 후 교회 나가시게 되었지만, 매형님은 종교도 없으셨어요.”

아, 그러셨구나. 그래도 상관없다. 난 믿는다. 나의 하나님은 이런 매형님 같은 분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감싸 주시고, 푸근하게 안아 주실 것이라고. 이 분 생전에 무슨 직업을 가졌던들, 돈이나 명예가 얼마이건, 그런 따위가 무슨 의미 있으랴? 험하고 힘든 이 세상 살면서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킬 수 있었는지, 고맙고 감사하다.

난 잘 안다. 나 같은 얄팍한 얌체족은 이틀은커녕 두 시간도 남 위해 걷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발버둥질 칠 인간임을.

성탄이라고 입은 떠들어 대면서…. 나는 뭘 하고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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