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양에 부채 급증···70년전 ‘금융억압’ 정책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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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막대한 부양금을 투입하면서 국가부채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연방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막대한 부양금을 투입하면서 국가부채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LA타임스]

GDP 대비 부채비율 2019년 109%→올해 131% 급등 우려
2차대전 후 시행했던 금융억압 정책 답습 전망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경기부양책 및 세금감면 등으로 미국 정부의 부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시행했던 ‘금융억압(FR·Financial Repression)’ 정책을 다시 펼쳐 구조적 금융위기 가능성을 낮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월스트릿저널(WSJ)은 14일 “미국을 비롯한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세계 각국 정부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그간 축적된 부채를 어떤 방식으로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미국의 부채 부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보다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국가부채비율이 지난해 109%에서 올해 131%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금융시장에선 정부의 부채 상환 방법에 대한 전망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용했던 금융억압 정책 부활이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슈로더의 케이스 웨이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금융억압 정책에 의존해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낮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억압은 시장이 자유롭게 작동했을 경우 다른 곳으로 향했을 자금을 정부가 개입해 끌어오는 정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 선진국들이 사용한 국가 부채 경감 방법이다. 국채금리 상한을 묵시적·명시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기관들이 국채를 보유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유동성을 풀어 이자율 상승을 막아 실질금리를 낮춰 부채 및 이자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연방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RB)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5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 국채 10년물 실질금리를 0.5%로 낮게 유지하며, 연평균 4.5%의 인플레이션율을 유발하는 등 경기가 회복된 이후에도 통화정책 정상화를 최대한 지연시켜 일정 수준의 경기 과열 및 인플레이션을 용인했다. 그 결과 미국의 국가부채비율은 119%에서 대폭 32%로 낮아졌으며 부채 관리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카르멘 라인하르트와 벨렌 스브란시아 경제학 교수가 2015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같은 기간 세계 12개 국가에서 평균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5%에 해당하는 부채 부담을 경감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현 수준보다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미래에 부채를 상환할 때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연준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 동안 고령화, 경제성장 둔화, 세계화, 기술발전 등의 이유로 인플레이션 2% 달성 목표에 실패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WSJ은 분석했다. 아울러 자칫 물가가 통제 범위를 벗어나 상승하게 되면 1970년대처럼 경제에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외에 정부 지출 삭감 등 긴축재정과 세금인상을 병행하는 대안도 제기되지만 정치적 분열·대립으로 시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의 리카르도 레이스 경제학 교수는 “긴축정책에 대한 논쟁이 지금처럼 헛바퀴 돌 듯 지속된다면 금융억압 정책을 통한 부채 상환 방식이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다만 금융억압 정책 역시 부작용은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강제로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만큼 저소득 계층의 부채 부담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저축 등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앙은행 입장에선 정치적 개입 등 독립성을 상실할 우려도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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