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풀이] 豁然貫通(활연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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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두표/시카고문인회

환하게 통해, 도(道)를 깨달음이란 뜻으로, 사물의 이치(理致)에 막혀있던 것이 꾸러미를 꿰듯 환하게 통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이 말은, 중국 남송(南宋)의 유학자(儒學者)인, 주자(朱子=朱熹)(1130 -1200)가, 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 호(號)는 노정(老亭), 회암(晦庵)이고 이름이 희(熹)인데, 자치통감(自治痛鑑)을 저술하였으며, 그의 학문을 주자학(朱子學)이라 하며 후세사람이 그를 주자(朱子)라 존칭한 것입니다. 그가 도통(道統)의 정(正)을 얻은 학이라 보고, 도학(道學)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주석한 글에서 유래했는데 그는 말하기를, ‘이른바 지혜에 이르게 되는 것이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지혜를 이루려고 한다면 사물을 대할 때 그 이치를 궁구(窮究)(속속들이 깊이 연구함)하는 데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원문의 일부를 적어보면, ‘而一旦豁然貫通焉, 則衆物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이일단활연관통언, 즉중물지표리정조무부도, 이오심지전체대용무불명의.) 즉 활연관통의 체험이 찾아오면, 나를 둘러싼 주위의 겉과 안 및 정밀하거나 거친 경우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마음의 중심과 작용도 환히 빛나지 않는 경우가 없게 된다. 는 뜻입니다. ‘豁’(활)은 ‘소통한다.’의 뜻으로, ‘害’(해칠 해)와 ‘谷’(골짜기에서 물이흐름)의 합자로, 집안에서 일어나는 남을 헐뜯는 말이 밖으로 흘러나가는 모양을 나타내는 글자이고, ‘然’(그럴 연)은 ‘⺼’(고기)과 ‘犬’(개)과 ‘灬’(불)의 합자로 개를 잡아 불에 굽는 다의 뜻으로 옛날 중국 사람들은 잔칫날 개를 잡아 대접을 했으므로 일상 있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집안에서 일어나는 중상의 말.’이 ‘然’(그럴 연)과 합쳐 ‘의문을 맑게 깨달은 모양’을 豁然(활연)이라고 하며, 사람이 이미 아는 것을 바탕으로 모르는 영역을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혈연관통의 체험인 것입니다. 우리말에 ‘당연(當然)하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이는 중국어로 ‘띵란’(當然=우리나라 발음으로 당연)인데 ‘當’(마땅할 당)은 ‘집을 지을 때 반드시 창문을 남쪽을 향해 내야하며, 손님이오면 응당 개(犬)고기를 대접하는 것이 일상의 일이므로’ 이를 두고 당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활연 이란 말을 지금은 ‘소통’(疏通)한다고 말하는데, 타인과 의사가 막힘이 없이 서로 통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남과 내가 서로 통하려면 먼저 상대의 뜻을 알아야 통할 수가 있습니다. 대화(對話)란 상대가 어떠한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상대방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그 의견을 일단 수용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바로 ‘불통’(不通)이 되므로 소통이란 불가능하게 됩니다. 물(水)이 흐르다가 무엇인가에 약간이라도 막히면 결국에는 수로(水路) 전체가 막히는 것이고, 아주 작은 한 개의 이물질이라도 들어내야 물이 잘 흘러가고 이를 소통이 잘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맹자(孟子)는 공손추(公孫丑)에서 공자(孔子)의 말을 빌려, 왕(王)이 백성들에게 덕(德)을 베풀면 이것이 흘러 퍼져 나가는데, 마치 파발마(擺撥馬)가 달려가 왕의 명령이 전달되는 것보다도 빠르게 퍼져나간다. 고 했습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경향이 있듯이 사람의 본성 자체에도 선(善)의 경향성이 있으며, 도덕적(道德的) 행위를 하는 것이 활연관통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