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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ly 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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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덴시아 박기영 대표] 160만 장의 붉은 고집, 바위산에 ‘영혼의 성전’을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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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형 테마파크 루덴시아 박기영(64세)대표
  • 시카고 한국일보 심층 인터뷰

2026년 7월 11일, 여주의 산자락에는 추적추적 굵은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빗물을 깊게 머금은 160만 장의 유럽산 고벽돌은 저마다 품어온 수백 년의 세월을 꺼내놓듯, 한층 짙고 처연한 적갈색으로 숨을 쉬었다. 궂은 날씨 탓에 야외의 굽이진 골목들을 온전히 거닐 수는 없었지만, 붉은 벽돌 위로 내려앉은 축축한 안개는 오히려 이곳을 아득한 중세 유럽의 어느 아침으로 데려다 놓았다. 루덴시아의 심장부, 나무 향이 배어나는 소박한 집무실에서 박기영 대표를 마주했다. 맑고 유쾌한 소년의 미소를 지닌 그였지만, 차분히 내려앉은 목소리 너머에는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바위산을 맨몸으로 깎아낸 구도자(求道者)의 단단한 결기가 서려 있었다.

  •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없기에, 세월의 지문을 통째로 실어오다

루덴시아를 걷다 보면 누구든 벽돌 건물에 눈길을 준다. 효율과 속도가 미덕인 21세기에, 박기영 대표는 굳이 머나먼 유럽의 해체된 옛 건물들에서 나온 고벽돌 160만 장을 수십 개의 컨테이너에 실어 한국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여주의 척박한 산자락에 손으로 일일이 쌓아 올렸다. 경제 논리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미련할 정도의 수고로움이다. 왜 하필 고벽돌이었으며, 왜 이토록 무모한 방식을 택해야만 했을까.

“새 벽돌을 공장에서 구워낸 뒤, 그럴싸하게 칠을 해서 헌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요즘 세상의 기술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하지만 그 흙덩이 안에 깃든 100년의 비바람, 그 곁을 스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와 사연은 결코 인공적으로 흉내 낼 수 없습니다.”

건축비와 운송비를 따지며 얄팍한 효율의 잣대를 들이댔다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이 공간에 단순한 건축물을 세우려 한 것이 아니라, ‘진짜 시간’을 심어놓고 싶었다고 회고한다.

유럽에서 직수입한 고벽돌 160만 장의 벽돌로 세워진 환상적인 갤러리형 테마파크
  • 차가운 스크린의 시대, 투박한 아날로그가 건네는 영혼의 위로

박기영 대표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즉 옛것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고, 기계가 예술을 넘보는 눈부신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선명하고 매끄러운 액정 화면 속에서 사람들은 물리적인 길을 잃지는 않지만, 역설적으로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린 채 부유하고 있다. 본지 특파원의 시선에 포착된 박 대표는 바로 이 텅 빈 내면의 지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압도적으로 편리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지친 영혼까지 위로해 주지는 못하더군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것은, 결국 사람의 체온과 손길이 닿았던 투박한 것들입니다.”

그의 집무실 곳곳에도 낡은 타자기와 손때 묻은 옛 소품들이 침묵의 언어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디지털의 선율 대신, 얕은 파열음이 섞여 나오는 LP판의 아날로그 사운드가 사람의 마음을 더 거세게 흔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루덴시아의 낡은 골목과, 모서리가 닳아빠진 아날로그 소품들 앞을 거닐다 보면 잔뜩 날을 세웠던 현대인들도 어느새 무장해제가 됩니다. 그 흠집과 투박함 속에 아직 숨 쉬고 있는 ‘인간의 냄새’ 때문이지요.”

그의 고집스러운 아날로그 사랑은, 그저 과거를 향한 맹목적인 향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속절없이 잃어버리고 있는 인간다움에 대한 간절한 복원 작업이었다.

  • 속아서 산 바위산, 절망을 정으로 쪼아 기적을 캐내다

지금은 1,000억 원의 가치를 품은 거대한 붉은 낙원이 되었지만, 루덴시아의 시작은 한 편의 잔혹한 서사에 가까웠다. 지인의 말만 덜컥 믿고 매입했던 여주의 첩첩산중. 부푼 꿈을 안고 첫 삽을 떴을 때,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부드러운 흙이 아니라 거대하고 시커먼 암반 덩어리들이었다. 산 전체가 뼈대 굵은 바위산이었던 것이다.

“처음 땅을 파내려 가는데, 굴착기 삽날이 튕겨 나갈 정도로 온통 바위뿐이더군요. 속된 말로 지인에게 완전히 사기를 당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눈앞이 캄캄해지고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짐보리와 맥포머스로 평생 일궈온 모든 성취가 이 차가운 산속에 파묻히겠구나 싶었죠.”

그는 당시의 아찔했던 절망을 회상하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보통의 이성을 가진 기업가라면 마땅히 손절과 포기를 택했을 상황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물러설 곳이 없었고, 기이한 오기가 영혼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다면 이 산을 부숴버리겠다는 숭고한 광기(狂氣)였다.

“결국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고, 정으로 바위를 쪼아가며 억지로 길을 냈습니다. 돌가루를 마시며 울분과 오기로 버틴 10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그토록 나를 절망시켰던 그 저주스러운 바위산이, 지금은 루덴시아의 수많은 붉은 성벽들을 세상에서 가장 굳건하게 받쳐주는 영원한 주춧돌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절망의 바위를 깎아 희망의 벽돌을 쌓아 올린 10년의 인고(忍苦). 그것은 단순한 토목 공사가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와 싸워 이겨낸 장엄한 징벌이자 위대한 구원이었다.

루덴시아 박기영대표(좌) 본지 특파원(우)이 루덴시아의 유럽에서 하나씩 수집한 소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청계산 자락의 집을 허물고 얻은, 인생 최초의 벼랑 끝 절박함

영유아 교구 브랜드 짐보리와 맥포머스로 이룬 성공은 그에게 남부러울 것 없는 안락함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루덴시아라는 거대한 꿈을 현실로 끌어내리기 위해, 그는 스스로 안전망을 찢고 벼랑 끝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려 10년이라는 기약 없는 착공 기간, 끝없이 솟구치는 공사비 앞에서 그는 가족들 몰래 애지중지하던 청계산 자락의 단독주택을 처분했다. 평생 빚 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가 250억 원이라는 막대한 은행 대출까지 끌어안게 된 것이다.

“빚 한 번 진 적 없던 제 인생에 250억 원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가족과의 추억이 깃든 집마저 넘겨야 했을 때의 참담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제 안의 모든 안일함이 부서졌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금전적 투자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삶을 건 영혼의 베팅이었다. 바위산을 부수고 160만 장의 고벽돌을 쌓아 올린 진짜 동력은 넉넉한 자본이 아니라, 벼랑 끝에서 피어난 ‘절박함’이었다.

“그 숨 막히는 절박함과 오기가 아니었다면, 저 거친 바위산을 끝내 허물지 못했을 겁니다. 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역설적으로 루덴시아를 완벽하게 빚어낸 가장 뜨거운 불꽃이 되었습니다.”

  • 1,000억 원의 대작, 10억 원의 아스콘이 결정지은 ‘영혼의 디테일’

루덴시아는 이미 95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뼈대가 올라가고 골목이 형태를 갖추자 주변에서는 당장 문을 열어 수익을 내자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그랜드 오픈을 목전에 두고 돌연 개장 연기를 선언했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이 말했던 “사소한 디테일의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는 철학이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950억 원을 쏟아붓고 개장을 눈앞에 뒀는데, 새로 깐 주차장 바닥의 질감이 도무지 제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미세한 단차와 투박한 마감, 거기서 타협한다면 이 숲속에 쌓아 올린 모든 아날로그의 가치가 가짜로 전락한다고 생각했죠.”

결국 그는 10억 원이라는 거액을 추가로 들여 주차장 아스콘 공사를 전면 재시공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차를 대는 시커먼 바닥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관람객이 루덴시아와 처음 맞닿는 첫 번째 촉감이자 타협할 수 없는 자존심이었다.

“사소한 디테일이 공간의 영혼을 결정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완벽을 기했던 그 미련한 결정이, 지금의 루덴시아를 완성한 진정한 마침표였습니다.”

총 1,000억 원의 자산이 투입된 이 공간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것은 웅장한 첨탑이 아니라 그가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 디테일의 숭고함이었다.

  • 스마트폰에 갇힌 아이들, ‘호모 루덴스’의 본능을 일깨우다

평생을 놀이 문화와 교구 사업에 헌신해 온 그에게 ‘놀이’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닌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그는 스스로를 유희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칭한다. 하지만 흙바닥과 바람 속에서 뒹굴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아이들은 네모난 스마트폰 액정이라는 좁고 차가운 감옥에 갇혀버렸다. 박 대표가 루덴시아를 꿈꾸기 시작한 가장 원초적인 동력도 바로 여기에 맞닿아 있었다.

실제로 루덴시아는 수동적인 관람을 넘어선다. 곳곳에 숨겨진 앤티크 소품들을 발견하고, 아날로그 기차가 내뿜는 묵직한 궤적을 쫓으며 오감을 열어젖히게 만든다. 단절되었던 부모와 자식 세대를 하나의 놀이로 이어주는 마법의 공간인 셈이다.

“루덴시아는 단순히 사진을 찍고 스쳐 지나가는 테마파크가 아닙니다.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잃어버린 놀이의 본능, ‘호모 루덴스’의 세포를 다시 요동치게 만드는 거대한 영혼의 마당이지요.”

3만 점의 시간,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영혼의 조각

루덴시아의 핏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비단 고벽돌만이 아니다. 박 대표가 70여 차례나 낯선 유럽의 골목을 오가며 직접 수집해 온 3만여 점의 앤티크 소품들은 이 거대한 공간에 살아있는 숨결을 불어넣는다. 아날로그 기차 1,000여 량이 일제히 묵직한 궤적을 그리며 달리는 트레인 갤러리에 들어서면, 시간은 순식간에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멈춰 선다. 그 방대한 컬렉션은 단순한 호사가의 수집벽을 넘어선, 어떤 경외감마저 자아낸다.

그 수많은 소장품 중에서 그의 심장과 가장 맞닿아 있는, 가장 애틋한 물건은 무엇일까. 그는 화려한 예술품 대신 누군가의 할머니가 밤새워 돌렸을 법한 낡은 재봉틀과 손때 묻은 작은 목각 인형을 조심스레 떠올렸다.

“이 투박하고 모서리가 닳은 물건들 속에는 그것을 매만지며 삶을 견뎌냈을 평범한 사람들의 체온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제가 3만 점의 소품을 미련하게 모아들인 것은, 단지 희귀한 물건을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와 ‘그리움’을 이 붉은 성전에 초대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그의 수집은 물질을 모으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서사의 채집이었다.

  • 개장 첫날 찾아온 ’23명’의 손님, 혹독한 시련이 피워낸 선한 연대

2023년 5월, 청춘과 전 재산 1,000억 원을 바쳐 마침내 루덴시아의 육중한 성문을 열었지만, 개장 첫날 찾아온 입장객은 단 ’23명’에 불과했다. 뼈아픈 현실 앞에서 그는 참담함을 넘어 겸허히 무릎을 꿇었다.

“그날의 텅 빈 골목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벽돌로 위대한 성전을 지어놓았더라도, 그 안을 채우고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이 없다면 결국 죽은 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그는 쓰라린 실패 앞에서도 조급한 마케팅 대신 가장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주시 가족센터와 손잡고 다문화 가정과 결혼이민자들을 초청해 ‘한여름의 유럽 여행’을 선물한 것이다. 소외된 이웃에게 문턱을 낮추고 연대를 맺어간 그의 행보는 공간의 가치를 사회의 가치로 승화시킨 눈부신 반전이었다. 23명으로 시작한 루덴시아는 이제 묵직한 선한 영향력을 뿜어내며, 상처받은 영혼들이 기대어 쉬는 치유의 숲으로 진화하고 있다.

  • 끝나지 않은 놀이, 영원한 ‘호모 루덴스’

“이제 척박한 바위를 깨고 벽돌을 쌓는 일은 끝났습니다. 앞으로 제게 남은 가장 즐거운 놀이는, 이 붉은 골목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환한 웃음소리를 조용히 수집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아날로그 기차를 보며 함께 웃고, 노부부가 낡은 축음기 앞에서 옛 추억을 나누는 그 찬란한 찰나의 순간들. 그것이 제 남은 생을 가득 채울 가장 위대한 장난감이자 보상입니다.”

기나긴 인터뷰를 마치고 산자락을 내려오는 길, 여전히 하늘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뺨에 닿는 빗방울은 서늘했지만, 내 가슴속에는 박기영이라는 한 낭만적인 인간이 피워낸 거대한 화톳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효율과 속도라는 잔인한 채찍질 속에서, 우리 모두는 어쩌면 잃어버린 유년의 뜰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위산을 깎아 기적을 만든 박기영 대표의 숭고한 ‘놀이’가 앞으로 우리 세상에 또 어떤 눈부신 파동을 일으킬지, 시카고 한국일보 특파원의 펜 끝은 벌써부터 그의 내일을 벅찬 가슴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가희 시카고한국일보 한국특파원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시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