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싶다’ 대책 없는 줄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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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일터 구분 사라져
화상회의·온라인 피로감
쉽게 짜증, 우울증 호소

40대 초반의 매튜 김씨는 두 달전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회사를 옮긴다거나 건강이 나빠진 것도 아니고 업무 과로가 더 심해지지도 않았다. 단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극도의 피로감에 시달리며 내린 결론이었다. 직장 상사를 포함해 주변에서는 모두들 다음 직장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사표를 내느냐 극구 말렸지만 퇴사를 결정했다.

“그냥 쉬고 싶습니다…” 올해 사표를 던진 젊은 직장인들이 말하는 퇴사 이유이다. 과거처럼 이직이나 일과 삶의 균형 등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번아웃’(심신 소진)이 되어서가 주 원인이다. 부모 세대나 직장 상사들이 보기에는 절실함이 없고 끈기가 부족해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보이지만 ‘번아웃’ 신드롬을 겪는 직장인들은 지나치게 일에 몰두해서 심신이 고갈되었다고 말한다.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로 재택 근무를 하고 있는 신디 최씨는 “처음에는 출퇴근으로 허비되는 시간이 줄어들어 여유가 있다고 느꼈는데 점점 집과 일터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일정이 불규칙해지면서 일일 근무시간이 더 길어지는 느낌”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최씨는 “줌 화상회의나 퇴근 후에도 즉각 답을 해야하는 온라인 소통이 피로감을 증가시킨다”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며 기분전환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동료들 중에는 번아웃이 되어 직장을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사직서를 제출한 직장인이 약 3,900만 명으로 집계가 시작된 지 2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월스트릿 저널이 연방노동부의 통계를 빌어 전했다. 구인담당자들은 직장인에게 닥친 번아웃을 주 원인으로 지목했는데, 실제 팬데믹 시국에 직원들이 호소하는 스트레스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싱크탱크 컨퍼런스보드가 지난 9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직장인 1,800명 중 75% 이상이 스트레스나 번아웃이 직장 내 복지에서 문젯거리가 된다고 꼽았다. 6개월 전 55%보다 20%가 늘어난 수치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쉽게 짜증이 나고 분노가 느껴지고 기력이 없어 쇠약해진 느낌, 감정의 소진이 심해 우울감이 들어 잠을 자도 쉽게 지치는 느낌이 들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기 전에 번아웃 신드롬을 의심해봐야 하다고 강조했다.

LA 한인타운에 쿨리닉을 운영하는 김자성 정신과 전문의는 “균형이 중요하고 자신을 돌보는 게 너무도 중요한 시기다. 기본적인 자기 건강관리가 안되면 업무 상 스트레스를 감당할 여력이 없어진다. 생활방식이 중요한데 늘 전시 체제와 같은 삶을 살게 되면 번아웃이 찾아온다”며 가벼운 운동으로 엔도르핀을 방출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김 박사는 “어느 날 갑자기 공황장애 증상이 느껴지고 불면증, 우울증이 심해져 정신과 상담을 오게 되는데 전반적으로 전문가들이 삶의 상황을 검진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저력을 키우도록 도와준다”고 밝혔다.

지난 20년간 미국인의 일일 근무시간은 평균 1.4시간 증가했다고 갤럽 조사가 밝혔고, 올해 미국 직장인 16%가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일한다고 대답했다는 설문조사도 나왔다. 10년 전만해도 주 60시간 이상 일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2%였다.

번아웃을 이유로 한 직원들의 이탈 현상이 심화죄면서 회사 측 고민은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재택근무나 하이브리드 근무를 강화하는 등 직원에게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주 4일제를 내세우기도 한다. 게다가 직원 고용유지를 위해 PPP 융자를 받은 업체들은 회사 복귀를 하지 않은 직원들처럼 사직서를 제출하는 직원들에게 실업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안내하고 있다.<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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